고려청자의 특징
                                                                                                  최건(해강도자미술관 학예실장)

1. 도기에서 자기로 발전
 인류가 처음 도기를 만들기 시작하면서부터 좀더 견고하고 편리한 그릇을 만들려는 의지는 끊임없는 도자기의 발달을 촉진하여 왔다. 처음 만들었던 연질도기(軟質陶器)는 쉽게 깨어지거나 수분을 흡수하는 등 실용에 불편한 것이었지만, 점차 개선된 원료를 사용하고 높은 온도로 구워내는 기술이 발전하여 연질도기보다 견고하고 쓰기 편리한 경질도기(硬質陶器)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경질도기도 소량의 수분을 흡수하고 또 표면이 거칠기 때문에 이러한 결점을 보완하기 위한 방법으로 유약(釉藥)의 개발은 필수적인 것이었다. 유약은 도기의 표면에 씌워지는 얇은 유리질의 피막으로서 수분의 흡수를 방지하고 표면을 마치 유리와 같이 매끄럽고 광택을 나게 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따라서 유약의 발명은 목칠기(木漆器)나 금속기(金屬器)보다 도자기를 실용적으로 만든 것이다.
 그런데 유약의 발명에서부터 세계의 도자문화는 양분(兩分)되기 시작하였다. 즉 저화도유약(低火度釉藥)을 채택하여 발전시킨 이집트와 서아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오리엔트 지역에서는 근대에 이르기 까지 고화도자기(高火度磁器) 제작기술로 전환되지 못하고 저화도도기 제작기술에 머무르게 되었고, 그 반면 처음부터 고화도유약(高火度釉藥)을 채택했던 중국과 우리나라를 포함하는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일찍부터 고화도자기인 청자의 백자를 제작할 수 있었다.
 따라서 동. 서양지역은 각자 다른 도자문화를 형성하게 되었고, 도자에 대한 관심도 각자 다르게 되었다. 먼저 저화도유약을 채택한 오리엔트 지역에서는 사람이 직접 사용하지 않는 관상용의 장식품이나 건축 자재들을 주로 제작하였지만 - 저화도유약은 매용제(媒熔劑)로서 산화연(酸化鉛)을 사용하기 때문에 인체에 유해하다 -, 고화도 유약을 쓰는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음식용 그릇이나 일상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도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생활문화에서 도자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따라서 오리엔트 지역의 저화도도기가 장식적이며, 다양한 색채를 사용하는 감상적 쾌락을 위한 것이라면 동아시아 지역의 고화도 자기는 그의 물리적, 화학적 특성에 의해 실용적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활문화를 풍족하게 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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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서 고화도자기(高火度磁器)인 청자(청자)를 만들기 시작한 시기는 통일신라후기(統一新羅後期)인 9세기 경부터 고려초기(高麗初期)인 10세기경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렇게 청자 발생시기를 분명히 설정하지 못하는 원인은 먼저, 이제까지 알려진 절대편년(絶對編年)을 갖는 자료로서 발생기의 청자가 갖는 특징을 갖춘 예가 없고, 둘째는 발생기에 해당하는 청자요지(靑磁窯址)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조사가 미진하였으며, 셋째는 9,10세기에 해당하는 일반 역사 및 고고학적 연구가 채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자 발생시기에 관해서는 우리나라보다 4,5세기 앞서 청자를 완성했던 중국과의 연관 속에서 비교 연구하는 것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이제까지 조사된 결과에 의하면 발생기 청자의 특징을 갖는 청자 요지에서는 중국 당(唐 : 618~907)후기 도자기의 특징적인 굽모양인 해무리형굽(日暈形굽, 중국에서는 玉璧形足이라고 함)의 완(碗), 발(鉢)과 광구형(廣口形)의 구연부(口緣部)를 갖는 광구병과 굽이 유난히 높은 완과 접시류가 출토되고 있다. 여기서 굽이 높은 완, 접시와 광구병등은 경주 안압지에서 출토한 경질도기와 유사한 형태를 갖고 있다. 그리고 해무리형굽의 완은 중국도자의 경우와 유사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청자가 발생한 시기를 중국에서 해무리형굽이 제작되고 있었던 8~9세기로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앞으로 중국측의 본격적인 연구가 진행되고 해무리형굽의 제작 시기가 명백히 밝혀지면 변경될 수도 있다. 청자의 발생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다른 예로서는 전남 영암군 동구림리의 대규모 회유도기(灰釉陶器)요지와 충남 보령군 진죽리의 대규모 회유도가 요지이다. 진죽리와 구림리 요지에서는 통일 신라후기의 특징적 형식인 광구형 구연부의 편병(扁甁)과 편호(扁壺)등이 중심을 이루며, 그 외에 대옹류(大甕類)와 시루, 자배기류를 포함하는 대형기명(大形器皿)등이 출토하고 있으나 완, 발, 접시등의 소형기명(小形器皿)은 거의 출토하지 않는다. 이러한 현상은 종일신라 전기로 추정되는 경주 부근의 인화문도기(印花文陶器)요지에서 대, 소기명이 같이 채집되는 것과 비교되고 있다. 즉 진죽리와 구림리요지에서 대형기명만 제작되었다는 것은 소형기명의 경우에는 다른 곳에서 제작되는 다른 질의 기명이 있었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다. 따라서 진죽리와 구림리에서 제작된 대형기명과 한 '세트'가 되는 다른 질의 소형기명을 금속기(金屬器)나 목칠기(木漆器), 또는 자기(磁器)로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다. 여기서 금속기나 목칠기는 각 원료의 높은 가치나 다량생산이 어렵기 때문에 한 '세트'가 되기 어렵고 원료가 풍부하고 다량생산이 가능한 자기가 한 '세트'가 되는 것이 이상적이다. 특히 진죽리 요지에서 제작된 대형기명이 다량으로 출토되는 익산 미륵사지에서는 통일신라 후기의 유물을 포함하는 동일 층위에서 대중 12년명(大中 12年銘 :858)의 옹편(甕扁)과 함께 진죽리 요지에서 제작된 편병류등이 출토하고 있으며, 소형기명으로는 중국의 해무리형굽의 청자, 백자와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해무리형굽의 청자가 함께 출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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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몇 가지 기술적 단계를 극복해야 한다. 우선 고화도(高火度)번조기술(燔造技術)에 의한 경질도기(硬質陶器)의 단계를 거치고, 다시 그 위에 고화도유약(高火度釉藥)을 씌운 회유도기(灰釉陶器)의 단계를 거친 후에야 비로소 청자를 제작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는 것이다.
 중국의 경우에도 기원전 15세기 경에 회유도기를 만들 수 있었지만 자기질(磁器質)에 가까운 초보적 청자는 기원후 4세기경이 되어야 만들어졌다. 그 이후 중국은 제작기술을 끊임없이 발전시켜 7~8세기가 되어야 청자를 완성시키고 보편화 시킬 수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이래로 10세기에 걸친 경질도기의 기술적 전통 위에 회유도기의 제작기술이 보편화되고 있어서 청자를 만들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은 이미 마련되어 있었다. 이러한 실정에서 중국으로부터 청자가 전해지고 그의 실용성과 아름다움이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자체 내에서 청자를 제작하려는 노력이 시도되었다. 오랫동안 고화도 번조기술(燔造技術)의 전통이 확립되고 있었기 때문에 청자의 제작기술을 습독하고 세련시키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중국에서 7~8세기에 완성한 청자를 우리나라에서는 9~10세기에 만들기 시작했고, 곧이어 흑자(黑磁)와 백자(白磁)도 제작할 수 있었다. 이러한 청자 제작기술의 습득은 인접한 일본의 경우 17세기 이후에 우리나라의 도공(陶工)에 의해 처음 자기를 만들었던 사실과 유럽각국에서 19세기에 들어서야 자기 제작기술을 습득했던 사실과 비교하면 한국 도자문화의 뿌리 깊은 전통과 제작기술의 우수성을 쉽게 설명해 주는 것이다.
 9~10세기에 처음 만들어졌던 청자에는 중국 도자기의 형식에 강하게 반영된 유형과 함께 통일신라시대에 형성되어진 전통적인 형식을 그대로 계승한 유형이 공존하고 있다. 그러나 10세기의 숙련기를 거치고 제작기술이 세련되는 11세기경에는 중국 도자기의 영향이 거의 사라지는 반면 고려인의 기호에 맞는 고려적인 형식으로 일관하게 되었다. 전통적인 도기의 형식을 청자화 하거는 당시 높은 수준에 있었든 금속공예품의 형식을 응용하면서 고려의 독자적인 창조력에 의한 고려의 양식을 이루게 되었다. 12세기는 고려청자의 절정기이다. 당시 고려인들은 청자의 표현하기 어려운 신비로운 유태(釉胎)의 색에 대해여 - 마치 비취옥(翡翠玉)의 색과 비슷하다고 하여 - 비색(翡色)이라고 하며 모든 물건 중에서 가장 귀하게 여겼으며, 그러한 비색 청자는 열 개중에서 하나를 뽑아낼 수 있을 만큼 만들기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고 높은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에 대한 평가는 고려인뿐만 아니라 청자를 앞서 만들었던 중국인들에게까지 동경의 대상이 되어 찬사를 받고 있었던 것으로 증명될 수 있다. 당시 중국 북송(北宋 : 960~1127)말기에 한 학자는 중국 천하에 명산품들을 열거하면서 백자의 경우는 중국 북부지방에 정요(定窯) 백자를 꼽고 있으나 청자만은 중국 밖의 나라인 고려의 청자가 천하제일이라고 지적하고 있어서 중국 역사 중에서 문화, 예술이 가장 융성했던 시대에 중국의 지식인층 사이에 고려청자가 존중되고 동경의 대상이 되었던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비색(翡色)과 함께 세련되고 유려한 형태는 청자가 갖는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미술 감식자들이 한국 미술의 특성을 말할 때, 고려청자의 우려한 선(線)에서 한국 미술의 특징을 파악하고 고려청자의 비색에서 한국 미술의 맑고 고요한 미(美)를 찾고 있듯이 청자의 조형미는 한국의 조형미를 대표하는 것이다. 이러한 선과 색의 아름다움, 즉 조형미는 오랜 전통의 기반위에 고려인의 독창적인 조형의지가 표출되었기 때문에 비로소 이루어진 것이다. 그 선의 특징은 중국도자에서 보이는 대담하고 양감(量感)이 넘치는 풍만한 것이 아니라, 강하지도 않고 허약하지도 않은 세련된 균형과 조화에서 비롯된 것이며, 다른 나라의 도자기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독창적인 조형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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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아름다운 청자를 만들었던 기간은 고려의 국력이 강하고 문화, 예술이 발달하고 있었던 11세기에서 12세기에 이르는 시기이다. 특히 12세기 전반의 인종(仁宗 : 1122~1146)시기는 부강한 국력을 바탕으로 학문의 발달과 불교문화 및 예술 전반에 뛰어난 성과를 보였던 시대였다. 따라서 청자의 조형미에도 당시 사회의 분위기가 반영되고 있었다. 즉 문양이나 요란한 장식이 배제되고 형태에 과장이 없고 절제되어 있지만 완벽한 균형미를 이루는 세련된 조형으로 일관하고 있는 점이다.
 이와 같이 뛰어난 선과 색의 조화는 시대의 변천에 따라 변모를 거듭해 나갔다. 그 변모는 세련된 조형위에 상감(象嵌)이라는 세계도자에 전례 없었던 독자적인 장식기법의 발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상감이란 청자의 몸체위에 음각(陰刻)을 하고 그 안에 백토(白土)나 적토(赤土)를 메꾸어 넣음으로서 장식하고자 하는 부분을 백색이나 흑색으로 나타내는 독특한 장식기법이다. 상감기법의 발생으로 고려청자의 조형미는 맑고 고요한 곳에서 밝고 명랑한 곳으로 변화되기 시작하였다. 다시 말하면 당시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던 불교적 이상의 세계에서 인간적인 현실의 세계로 가까이 옮겨짐으로서 좀 더 접근하기 쉬운 조형으로 변화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상감청자에는 고려인들의 사상과 현실세계에서 동경의 대상이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상감청자와 함께 이룩된 성과중의 하나는 산화동(酸化銅)을 이용하여 붉은색을 내는 방법이 발견된 것이다. 유약에 산화동을 사용한 예는 오래 전부터 있었고, 특히 중국의 당삼채(唐三彩)에서 산화동의 사용은 보편적인 것이었지만, 중국의 경우는 저화도연유(低火度鉛釉)의 경우나 고화도 산화번조(酸化燔造)인 경우여서 산화동의 발색이 녹색(綠色)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고려의 경우는 환원번조에 의한 붉은색을 낼 수 있었으며, 이는 중국보다 1세기경 앞서서 12세기 중엽에 고려인이 발견한 것이었다. 그 외에 산화철(酸化鐵)로서 문양을 그린 철화청자(鐵畵靑磁)와 퇴화청자(堆畵靑磁), 철채(鐵彩), 동채(銅彩)청자 등 다양한 장식기법을 이용하는  청자들이 만들어졌으나 고려청자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비색청자와 상감청자이다.
 고려시대 후기에 이르면 청자는 점차적으로 쇠퇴되어 간다. 그러나 기술적인 퇴보가 진행되는 한편 다량생산이 진전되기 시작하면서 높은 정신세계를 상장하던 청자의 조형의식은 양적으로는 다량생산되고 보편화되어서 새롭게 변모한 것을 분청사기(粉靑沙器)라고 부른다.

 
(강진문화 8. 강진문화원, 1989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