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기의 과학성 
                                                                                                           박순관(도예가)

월간도예 2001년 10월호

옹기들은 부엌 가까운 뒤뜰에 햇볕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 아니면 앞 뜰 우물가 가까운 양지바른 곳에 돌로 쌓은 높직한 단, 즉 장독대 위에 놓인다. 예전에는 장독대의 항아리 숫자로 그 집안 살림살이의 규모를 가늠하기도 했고, 장독대의 정돈 여부로 그 집안 여인들의 살림 수준을 판단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옹기는 소박하고 깊은 정이 스민 그릇으로서 아주 오랜 동안 우리 민족의 필수적인 생활 용기로 자리잡아 왔다.
또한 우리 민족은 발효식품의 종주국이라 불리어 질만큼 오랫동안 김치, 젓갈, 장류와 같은 염장 음식을 선호하여 왔다. 그만큼 식품 저장이 발달된 것은 옹기라는 그릇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통이 발효식품을 갈무리하는 저장 용기로 가장 적당한 옹기를 선택하도록 한 것인데, 이는 오랜 세월을 통하여 얻은 경험과 슬기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도시 주택이나 아파트 등의 현대 주거 공간은 전과 달리 장독대 설치가 쉽지 않고, 옹기보다는 플라스틱이나 금속 용기를 사용하는 것이 간편하기 때문에 옹기 문화가 사라지는 형편이다. 그러나 그 조형성만으로도 물질 문명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고향의 장맛 같은 향수를 일깨워 주기에 충분하다. 최근에 이르러서는 옹기가 지닌 과학성이 규명되면서 그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관심이 일어나고 있음을 볼 때 매우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역사와 함께 해 온 옹기

옹기라 함은 질그릇과 오지그릇을 통틀어 가리키는 것이다. 질그릇은 흙으로 만들어 유약을 칠하지 않고 그대로 구운 것을 말하는데, 이는 두 가지로 구분된다. 우선 900도C 이하의 비교적 약한 불에 구운 것과, 또 하나는 1200도C의 높은 온도에서 구워진 것으로 구분된다. 전자는 시루로 대표되는 작은 그릇들이며, 후자는 독과 같은 큰 것들로 물을 저장하거나 김치, 장류를 담그는 것들이다.

오지그릇은 철분이 많은 약토라 불리는 흙과 나뭇재를 섞어서 만든 유약(잿물 혹은 오짓물)을 칠한 후에 1200도C를 전후로 한 온도에서 구워진 것을 말한다.

이들 옹기는 백자나 청자와 같은 자기질에 비하여 낮은 온도에서 구워지기 때문에 흡수성이 약간 있고, 강도가 약하다. 또한 자기처럼 귀하거나 고급스러운 것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네 살림살이 가까운 곳에 진득하니 눌러앉아 맛을 내고 오랫동안 먹거리를 지켜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질그릇의 지혜
서양의 질그릇은 구울 때 산소를 많이 공급하기에 붉은 색이 주류를 이루지만 우리 나라의 질그릇은 굽는 마지막 순간에 가마 아궁이에 소나무 가지 등 연기가 많이 나는 연료를 넣고 점차로 아궁이와 굴뚝을 막아 연기가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그릇 속까지 탄소 알갱이가 스미게 함으로써 검은 회색으로 구워진 것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구운 꺼먹이 그릇으로는 물독, 질밥통, 떡시루, 화로, 장군 등이 있다. 이들 그릇은 흡수성이 있으며, 강도가 약하고, 가볍다. 이런 점은 그릇으로서는 약점이 될 수도 있으나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기 때문에 현대에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질그릇은 정수와 온도조절 기능을 갖는다
질그릇에 액체를 담았을 때에 잡물을 빨아들여 기벽에 붙거나 바닥에 가라앉게 만들어 물을 맑게 한다. 기공이 숭숭 나 있는 몸체는 수분을 빨아들여 밖으로 기화시키면서 열을 발산해 그 속에 담겨 있는 물을 항상 시원하게 해 준다. 실제로 내용물의 온도는 바깥 온도보다 약 5도-10도C 낮은 차이를 보이게 된다. 결국 청자나 백자와 같은 단단하고 물을 빨아들이지 않는 자기질에 비하여, 약하지만 물을 잘 흡수하는 질그릇이 물을 보관하는 데에는 더 유리하며, 물이 오랫동안 썩지 않게 하는 역할까지 한다.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등 열대지방에서 빗물을 질그릇에 받아 보관하면서 식수로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이러한 질그릇만의 특수성을 이용한 것이다. 동남아의 날씨와 비슷하고 물이 귀했던 제주도에서도 내륙지방의 오지그릇보다는 유약을 바르지 않은 채로 구운 질그릇 옹기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제주도에는 사철 푸른 채소가 있기 때문에 절실하게 김치를 필요로 하는 것보다는 물을 떠서 옮기거나 저장하는 용기로의 쓰임새가 더욱 강했던 탓이다. 따라서 제주도 옹기는 보기에 아름답고 물 저장 용기로는 좋으나 발효식품의 용기로 사용하기에는 염분이 너무 새어나와 부적합한 것이 많은 까닭도 그러한 연유가 있다

꺼먹이 그릇의 방수, 정화기능
꺼먹이 질그릇의 경우에는 살균력까지 갖추고 있어 장독에 숯을 넣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갖는다. 현대에 들어와 꺼먹이 독이 물 항아리와 쌀독으로 새롭게 등장하는 것도 바로 물을 정수하는 역할과 함께 벌레를 막아 주는 성질을 이용한 것이다. 실제로 대장균을 넣은 물을 옹기, 비닐, Pet병, 바이오 용기 등에 넣어 실험한 결과, 꺼먹이 그릇에 넣은 세균 수가 가장 빨리 감소하는 실험결과를 보여 주기도 했다.

질그릇 밥통에 뜨거운 밥을 보관할 때는 그 속에서 생기는 수증기를 흡수하는 성질 때문에 밥이 항상 꼬들꼬들하게 맛있게 보관되며, 질그릇 시루에 떡을 찔 때면 떡도 잘 쪄지면서 기물에 붙는 일이 없게 된다. 현대의 전자 밥통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우리의 옛 질밥통을 모델로 연구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이다.

숨쉬는 그릇, 옹기
오지 그릇은 유약(잿물)을 바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기와는 달리 '숨을 쉬는 그릇' 혹은 '땀을 내는 그릇'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옹기를 만드는 흙을 이용해서 약 1200도C로 구우면 완전히 자기화가 되지 않아서 수분은 통하지 않지만 공기는 안팎으로 어느 정도 통한다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이러한 특성이 장을 담글 때에 음식이 썩지 않고 천천히 적당하게 발효되도록 해준다. 만약 숨을 쉬지 않는 자기에 장을 담그거나 김치를 담그면 얼마 안 가서 썩어 버리고 만다.

발효식품의 용기로 알맞게 구워진 옹기 조각의 단면을 전자 현미경을 사용하여 1500배 이상으로 확대하여 살펴본 바에 의하면 미세한 구멍이 많다고 한다. 유약의 표면에도 흙 속의 모래성분에 의하여 유약이 함몰되거나 밖으로 튀어나온 사이로 생겨난 작은 구멍이 많다.

편광 현미경 관찰에 의한 결과로는 적당한 크기의 석영 입자의 개수가 많고, 그 사이 사이에 결정수가 빠져나간 자리에는 아주 작은 틈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너무 잘 구워진 옹기는 석영이 너무 발달해 그 입자가 커지면서 오히려 통기성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고 한다.

X선 회절 시험에서는 다공질의 성격을 가진 류사이트가 보이는데, 이것들이 통기성을 증가시킨다고 한다.

위의 세 가지 실험을 살펴봄으로써 적당하게 구워진 옹기 몸체에는 작고 많은 비밀스런 통로들이 옹기 표면에까지 무수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비밀스런 통로들, 즉 구멍의 크기는 1-20 마이크로 크기로서 그보다 아주 작은 0.00022 마이크로의 산소는 쉽게 드나들고 구멍보다 2000배가 넘는 크기의 빗방울은 옹기의 내부로 침투되지 않는다. 이렇게 기물의 안팎으로 공기가 통하게 되는 것을 숨을 쉰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또한 땀을 낸다는 것은 숨구멍으로 물보다는 작고 산소보다 큰 0.00056 마이크로의 소금기나 0.00096 마이크로의 설탕기가 옹기의 표면으로 흘러 나가 맺히는 것을 보고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다. 매실이나 된장, 고추장과 같은 발효식품에는 숨을 쉬는 것은 물론 땀을 내는 옹기가 더욱 좋다는 옛 노인들의 말씀이 있다.

일상생활에서 옹기와 유리그릇에 꽃을 꽂아 보면 옹기의 꽃이 훨씬 싱싱하게 오래감과 동시에 꽃봉오리까지도 피게 됨을 알 수 있으나, 유리그릇의 꽃은 일찍 시들고 꽃봉오리는 그대로 마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역시 금붕어를 키우는 일에 있어서도 옹기에서 키운 금붕어가 오래 사는 경우와 같은데, 이는 모두 숨을 쉬는 옹기그릇의 미세한 구멍을 통하여 내부의 나쁜 공기를 밖으로 배출하고 유익한 공기를 받아들이는 역할 때문이다.

김치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맛을 내는 것은 젖산이다. 젖산이 많으면 김치가 쉽게 부패되지 않고 잡균의 생육이 억제된다고 한다. 젖산균은 혐기성 식품, 즉 공기를 싫어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지만 다량의 공기를 싫어할 뿐, 미량의 공기를 좋아하므로 그런 성질을 가진 옹기가 젖산균을 오랫동안 활동하게 함으로써 김치의 저장에 유리하다. 또한 김치가 아삭아삭 씹히는 경도는 맛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것인데, 옹기는 쉬 무르지 않고 신선하게 유지되게 하는 장점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옹기라 하더라도 흙의 입자가 모래 한 알 없이 입자가 너무 곱거나 흙이 자기화가 될 정도의 높은 온도로 구워진다면 발효식품 용기로서의 기능은 떨어진다고 하겠다. 도공들의 오랫동안의 경험과 슬기를 바탕으로 과학적 실용 공예의 산물로서의 역할을 다 하도록 적당하게 구워진 것이 진정한 옹기라 하겠다.

내열성 재료를 이용한 옹기
주로 찬 음식을 선호하는 서양의 문화는 넓게 퍼진 금속제 접시를 많이 필요로 하는 반면에 우리 선조들은 더운 음식 문화를 지켜오면서 속이 깊은 그릇이나 내열성의 흙을 이용한 옹기를 애용하는 관습이 있다.

이러한 옹기 중에는 질솥, 약탕관, 뚝배기, 화로, 풍로 등, 불에 직접 올리거나 불을 담아도 깨어지지 않는 그릇들이 있다. 이들은 일반적인 옹기 흙과는 달리 내화성분을 가진 흙으로 만든 것으로 열전도율이 낮은 재료를 이용하여 급열 급랭에도 강한 성질을 이용한 것이다. 사토가 많은 지방이나 경상도 산청지방에서 주로 생산하였다. 이렇게 불을 다루어야 하는 그릇들은 굽는 온도를 낮게 하여 질그릇 상태로 굽는다거나 아니면, 일반 옹기와 같은 온도에서 구울 때는 내열 성분을 가진 흙을 섞어서 자기화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예로부터 솥, 약탕관, 뚝배기 등의 끓일 수 있는 용기에 음식이나 약을 은근한 불로 달였을 때에 맛도 좋고 효능도 좋다고 알려져 왔다.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달궈진 세라믹에서 나오는 원적외선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이런 그릇들이 가진 과학성이 증명되고 있다. 원적외선은 파장이 지극히 짧은 광선으로서 음식물 내외의 공진 현상을 통해 침투, 흡수되므로 가열 효과가 매우 빠르고 효율적이어서 뼈나 딱딱한 음식물까지도 잘 익혀 준다. 지금도 된장국이나 탕을 끓일 때에 뚝배기를 찾고, 차인들 사이에서 찻물을 끓이는 질주전자가 유행하며, 질솥으로 밥을 해 내는 음식점이 인기가 있는 것은 그러한 옹기의 과학성이 입증된 까닭이다.

제주도 옹기 가마에서는 화로를 아궁이 부분에 따로 재임하여 놓았다가 불을 때는 중간에 초벌상태로 구워졌을 때에 꺼낸다고 한다. 제주도의 비교적 화도가 낮은 흙으로 만든 화로가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하여 그렇게 굽는 방법도 좋은 아이디어라고 하겠다.
이러한 화로와 풍로와 같은 그릇들은 활활 타오르는 숯을 넣어도 깨지지 않으며 따뜻한 기운을 오랫동안 보관할 수가 있다.

제작 기술도 세계 최고
우리 나라 옹기의 우수성은 다양한 용도나 단순하면서도 조형적인 아름다움 외에도 옹기를 제작하는 기술적인 면에서 나타난다.
세계의 많은 지역에도 우리 나라와 비슷한 독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을 만드는 방식에 있어서는 두드러진 차이가 있다. 외국의 도예가들이 그토록 짧은 시간에 커다란 옹기를 만들어 내는 우리 나라 옹기 기술에 대하여 상당히 놀라워하는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다고 평가한다. 이는 우리만의 독특한 기술을 개발하여 왔기 때문이다.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와 남태평양, 아프리카에서는 모두 물레를 사용치 않고, 기물의 둘레를 도공 자신이 돌아가면서 만들기에 물레를 사용하는 우리와 비교할 수는 없다. 그리고 옹기를 만드는 이탈리아, 그리스, 인도 등지에서는 물레를 지상에 설치한다. 한국의 물레와 기술을 유입한 일본에서도 대체로 지상에 설치하여 큰 기물을 만들 때에 도공이 발을 딛고 올라가야 하고 조수가 물레를 돌려주어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에는 구덩이를 파고 물레를 지하에 설치를 한다. 즉 물레의 윗판이 지상과 수평을 이루고 의자의 높이도 같다. 옹기대장은 구덩이에 들어가 옹기를 만들기 시작하여, 기물이 커지면 점차 평지로 나오면서 만들어 간다. 따라서 아주 큰 기물은 조수가 물레를 돌려주지만 혼자서도 거의 키 만한 기물을 혼자 물레를 돌려 가며 만들 수 있다.

또 한가지의 우수성은 수레질에 있다고 하겠다. 흙가래를 쌓는 방법, 즉 타렴질은 비슷하지만 외국에서는 대부분 흙가래를 한 단씩 쌓아 가며 어느 정도의 높이에 이르면 벽이 흔들거려서 더 쌓을 수가 없어 꾸덕꾸덕한 정도로 말려야만 한다. 옹기를 만드는 데에 있어 수레질을 하는 나라는 거의 없으며, 수레질을 한다고 하더라도 성형이 끝난 다음이나 혹은 어느 정도 마른 후에 표면을 고르기 위한 수레질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에는 흙가래를 타렴질한 뒤에 곧바로 수레질을 하여 형태를 완성해 감으로써 기물을 완성하는 시간이 단축된다. 그러면서도 기물의 벽은 단단하고 얇아서 곧바로 물레에서 떼 내어 옮기는데, 외국의 도예가들은 이러한 광경을 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한다. 물론 소성 후에도 가벼우면서도 단단해서 사용하기에 편리하다. 이렇듯 옹기를 제작하는 기술도 매우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