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브제와 설치작업
원경환(홍익대학교 도예과 교수)

1. 오브제는 다다이즘(Dadaism) 및 초현실주의가 찾아낸 개념으로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보편적인 미술용어가 되었다.
 이것은 이차원적인 사상이나 관념을 위한 매체가 아닌 시각예술의 대상 그 자체를 일컬으며 '물건으로서 제시한다'라고 하는 태도에 기본을 두어 보는 자의 순수한 시각인상에 맡기려고 하는 입장이다. 따라서 도예의 경우 본래 의미에서 생각하면 물레로 성형된 형태이거나 그 밖의 어떤 방법으로 성형된 형태이든 문제가 될 수 없으나 우리나라의 경우 용(用)을 부정하고 순수한 조형성을 추구하는 작품을 '오브제'라고 부르고 있다. 이러한 소위 입체조형으로서의 도예는 전위도예 혹은 오브제라는 호칭으로 1950년대를 전후하여 일본에서는 야기 가즈오(八木一未)에 의해, 미국에서는 피터 볼코스(Peter Voulkos)에 의해 거의 동시에 시작되어 급속하게 퍼졌다.
 이 비실용적인 도예의 성립은 조형성의 추구라는 점에서는 두 나라가 공통적이나 그 직접적인 계기는 상반된다. 이를테면 일본은 그때까지 전통적인 양식에 안주하고 있는 일본 도예계의 보수성에 대한 반발과 부정, 그리고 그것에 구애받지 않고 내부의 요구를 솔직하게 표현하려고 하는 의욕때문이었으며 이것에 반해 도예의 전통이 없던 미국에서는 당시 활발했던 추상표현주의 회화에 자극되어 화가가 손과 캔버스와의 직접적인 관계를 작품화한 것처럼 몸 전체를 흙에 부딪쳐서 다이나믹한 형체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추상표현주의 회화가 칠하고, 선을 긋고 하는 전통적인 회화수법뿐만 아니라 모래나 천, 그 외의 물질을 붙이는 등 틀에 박힌 제약을 넘어선 작업을 하게 된 것으로부터 유발되었으며 동시에 흙이라는 재료의 특성이 새로운 조형을 모색하는 시점에서 추상표현주의 정신의 구현에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피터 볼코스(Peter Voulkos)가 도예를 시작할 때 그의 관심은 미국에서 그때까지 행세하고 있던 유럽 도예의 전통을 외면하고 도예가 정신적인 표출과 관계하는 동양, 특히 일본에 있었다.
 흙이 갖는 특성인 자유로운 가소성, 유약과 불과의 우연한 만남에 매료당했으며, 따라서 근대적인 예술의식을 갖고 민중의 생활 속에서부터 파헤쳐진 일본의 민예를 하나의 범례로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피터 볼코스(Peter Voulkos)가 동료들과 활발한 활동을 개시했던 때 그들의 작업은 일본 민예적 영향의 근본에서 멈추지 않고 점토를 두드리고 던지고 몸으로 마음껏 격투하면서 만들었다.
 결국 민예와의 결정적인 차이는 일본의 민예는 용(用)을 강하게 주장하지만 그들은 도예를 순수예술의 한 수단으로 하여 현대미술의 동향에 직결시키고 예술적 표현의 방법으로서 도예를 선택한 것이다.
 피터 볼코스(Peter Voulkos)는 기물로서의 도예개념을 파괴하기 위해서, 그리고 자유로운 예술로서의 도예 창조를 위해서 일본의 민예파 작가인 가와이 칸지로(河井寬次郞)의 찻잔을 표본으로 삼아 찻잔이 갖고 있는 적당한 크기의 한계에서 벗어나 자신의 표출 욕구를 충족시키려 했다.
 아무튼 현대미술의 추세에 응하여 개성적인 조형의욕으로 작업을 하던 이들 추상표현주의 도예가들은 도예의 고유한 길을 개척해 갈 수 있는 기초를 만들어 놓고 곧 다른 표현방법을 찾아 나서게 된다.
 한편, 전통도예의 무거운 압박에 대한 반발로 오브제도예를 시작한 일본에서도 l954년 전혀 실용성을 부정한 획기적인 오브제인「ZAMZA씨의 산보」가 야기 가즈오(八木一未)에 의해 발표된다.
 이것은 물레에서 성형된 작은 원통을 절단하여 재결합한 작품으로 이를 계기로 하여 회화적 드로잉은 물론 무유소성과 물레성형에 구애받지 않은 작품이 급속하게 늘어갔다. 또 야기 가즈오를 비롯한 교토(京都)의 도예가들은 소데이샤(走泥社)라는 전위도예그룹을 결성하여 공예로서의 도예로부터 자립한 순수예술로서의 도예의 방향을 탐구하였다.
 이렇게 실용적인 기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오브제 도예의 출현은 현대미술의 상황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장르 구분에 혼란을 갖게 되는데 실용적인 기능을 갖지 않는 도예는 이미 도예라고 하기보다는 조각에 가까운 것이 되나 조각과 도예의 사이에는 근본적으로 동떨어진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소재의 문제로 조각의 경우 최대한의 표현을 위해서는 소재의 범위를 자유롭게 넓혀 원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지만 도예는 어디까지나 흙에 얽매인다. 흙이라고 하는 전제 아래서 흙을 어떻게 다루어서 그 표현을 얼마만큼이나 넓힐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도예의 명제인 것이다. 즉 소재에 대해서 수동적이 되며 그 소재의 특질에 따라 제작해야 하는 것이 도예뿐만 아니고 넓게는 공예라고 불리는 장르에 공통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는 조각의 경우에는 '형태로부터 발전하고 있다'라는 의미로서 소재와의 관계에 있어서 능동적이라고 할 수 있으나 도예에서는 흙덩어리에서 시작하여 흙덩어리의 변화 속에서 형태를 완성시키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현재상황에서의 장르적인 구분, 말하자면 같은 흙을 소재로 하면서 완성된 오브제가 조각, 도자 등으로 구별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으며 또한 근래의 미학 또는 미술사의 분류에 구애받지 말고 결국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작품을 이러한 방향으로 보아주면 좋지 않겠는가 하는 태도의 결정이 오히려 중요한 일일 것이다.
2 오브제라는 물질보다는 오브제가 놓여질 공간. 즉 무엇을 보여 줄 것인가 보다는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를 중시하는 방법이 '설치작업' , 또는 '설치미술' (Installation)이다. 이러한 설치작업은 종래의 평면이나 입체를 다루려는 시점에서는 규정지을 수 없으며 어떤 특정의 장르, 혹은 이즘을 지칭하는 단어도 아니다. 테크닉, 방법 등의 구체적인 양상이 다양하고 이질적이며 인접분야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보는 이에게 새로운 공간적 경험을 제공해 주고 이러한 공간을 경험한 사람들의 해석에 중점을 두려고 하는 입장이다.
 1970년대부터 개념미술(Conceptual Art)과의 관련 속에서 일반화된 설치작업은 비교적 새로운 용어인데 그 원류는 꼴라쥬(Collage), 아쌍블라쥬(Assemblage)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꼴라쥬는 피카소나 브라크의 작품과 같이 어디까지나 회화의 평면 위에 종이나 천 등에 의한 2차원적인 조립인데 아쌍블라쥬의 경우는 공업제품의 폐품과 같은 입체물을 구성요소로 한다는 점에서 꼴라쥬와 차이가 있으며 그 결과는 3차원적인 입체가 된다. 쓰레기나 악기의 파편을 긁어모으는 아르망의 작품은 아쌍블라쥬의 대표적인 예이며 평면 드로잉된 의자와 실물의 의자를 연결시켜 작품화시킨 라우센버그의 '컴바인 페인팅'도 아쌍블라쥬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작품들은 각 요소를 고정적으로 결합하고 있기 때문에 일정한 외관을 영속적으로 보여주는데 반해 설치작업의 경우에는 특정한 공간 속에서 여러 가지 요소를 조립(또는 조합, 장치, 설치)하는 것으로 전시기간이 끝나면 해체되어지는 한시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물론 설치작업은 실내에 한정되지 않고 야외의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설치작업은 꼴라쥬나 아쌍블라쥬와 마찬가지로, 또한 레디메이드나 퍼포먼스와 마찬가지로 미술을 인습적인 형식에 연결시키려고 하는 것에 대한 저항으로서 태어난 방법의 하나였다. 즉 상품화되어 유통하기 쉬운 형태로 정리되어지는 미술작품의 형식에 대립하고자 하는 것으로 화랑이나 미술관 등의 특정한 공간 속에서 한시적으로 설치되는 상황이나 환경은 액자에 넣어진 회화작품이나 전시대 위의 조각작품과 같이 쉽게 상품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도예에 있어 설치작업의 출현은 다른 장르도 그러하듯이 미술이라는 커다란 흐름과 함께였다. 따라서 도예의 새로운 가능성 추구의 지평에 있어서는 다양해지는 미술의 다른 장르와 같은 시발점에 서야하는데, 다른 장르의 전위에서 나타난 성과를 실험해 보거나 그 작품을 본떠서 자신의 기술로 만들거나 하여서는 이제까지 그래왔듯이 소예술(Minor Art)로 대접받을 수밖에 없으며, 또한 흙이라고 하는 소재에 있어서도 자신의 의식과 예술의지를 충분히 나타내기 위해 최대한으로 제약을 없애려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른바 현대도예를 하는 작가들에게는 비교적 제약이 없는 설치작업과 같은 자유로운 도예와 용(用)을 강하게 의식한 세계를 둘 다 갖는다는 것이 거부감을 줄지도 모르나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을 어떤 형태로 이끌어 가는가는 결국 자신이 만드는 것이며 중요한 문제는 오직 만들고 싶은 것은 만들어야 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일 것이다.

3. 지금은 새로운 도예의 방향을 탐구하는 모색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방향을 진행하는 자체가 도예계에 있어서 전위적인 자세이다.
 현재 우리들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우리의 풍토감각에 근본을 두고 시대의 유행에 따라 변하지 않는 멋과 시대정신이며 또한 그 시대정신에 맞는 자신의 의식을 작품에 흡수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작품의 질이나 내용을 묻기 이전에 왜 지금 이것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안되는가 하는 문제의식도 필요하다.
 그 결과는 기물이거나, 오브제이거나, 설치작업이거나 그 어떤 것이 되든 상관이 없다. 기술적인 것은 물론이고 재료가 갖는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 물론 생리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고 고통이 따르지만 장식성 위주의 마티에르에만 집중하지 않고 보다 확실한 조형력을 갖는 작품을 추구한다든지, 혹은 점토이외의 다른 재료를 도입한다든지, 또는 아무것에도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발상으로 다양한 이미지를 표출하는 등 그 방향을 다양화 시켜야할 것이다.
흙이 갖고 있는 가능성은 실로 크고 무한하다. 우리의 현대도예는 그 가능성의 문을 열기 시작하였다. 현대도예가 현대미술 안에서 발언할 수 있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으며 우리의 현대도예가 세계적인 도예의 동향 안에서 그 위치를 확인해야 할 때도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김해성 「현대미술을 보는 눈」(서울 : 열화당, 1985)
원경환 「월간 현대공예 88-3호」 " 새로운 조형모색으로서의 오브제 도예"(서울 : 시각디자인사, 1988)
정헌이 「월간미술 제 7권 제 9호」 "설치미술로 가는 길"(서울 : 중앙일보사, 1995)
       佐谷和彦, 「私の畵廊-現代美術 とともに」(東京, 佐谷畵廊出版部, 1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