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오사카에서는 ‘2002 한ㆍ일 국민교류의 해’를 기념해 좀처럼 보기 힘든 두 개의 조선시대 미술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오사카 시립동양도자미술관에서 ‘마음의 도자기’라는 제목으로 열리고 있는 ‘이조(李朝)-조선시대의 도자전’(12월 8일까지)과, 만국공원(万國公園)에 있는 오사카 일본민예관에서 ‘이조의 공예’라는 이름으로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수집 도쿄 일본 민예관 소장품 280점이 나들이 하는 전시(12월 15일까지)이다. 지난 주말 현지로 가서 두 전시회를 직접 보고 온 유홍준 교수의 관람기를 싣는다 -편집자

꿈결같은 2박 3일의 미술관 순례였다. 오사카로 떠날 때만 해도 내겐 한국미술사 전공자로서의 의무감 같은 것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막상 오사카 시립동양도자미술관의 5개 전시실을 가득 채운 분청사기와 백자들을 보는 순간 마치 눈부신 보물창고에 들어 온 것만 같은 감동과 설레임으로 좀처럼 미술관을 떠날 수 없었다.

낸들 조선백자와 분청사기가 아름답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고, 아다카(安宅) 컬렉션과 이병창(李秉昌) 컬렉션을 기증받아 세운 이 미술관의 세계적 명성을 모르는 바도 아니었다.

그러나 아다카 컬렉션의 명품들이 이처럼 총출동하듯 한 자리에 모인 적은 없었다. 단원 김홍도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청화백자 진사채 연꽃무늬 항아리’, 이중섭 작품 ‘부부’를 연상케 하는 ‘분청사기 음각 새무늬 편병’, 해방 후 50여년 만에 처음 공개되는 ‘청화백자 초화무늬 8각 항아리’, 그 어떤 미인도 따라올 수 없는 피부와 몸매와 지성미를 갖춘 ‘청화백자 추초(秋草)무늬 8각병’…. 그 누가 쓴다 해도 한국도자사, 한국미술사에 반드시 나올 대표적 작품들이다.

이런 천하의 명품들이 한자리에 모여 아름다움의 경연을 벌이고 있으니 그 축제의 화려함도 화려함이지만 이제까지 내가 느껴온 조선 도자에 대한 이미지의 고양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이 무엇이었을까?

이 전시회를 기획한 이토 이쿠다로(伊臟郁太郞) 관장은 조선 도자는 ‘마음의 도자기’라는 관점에서 볼 것을 우리에게 권하고 있다. 즉, 조선 도자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연의 순리를 거역하지 않는 작풍(作風)이 있어 사람의 긴장을 풀어주며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매력이 있다며 그것은 분명 손으로 만든 예술이 아니라 가슴으로 만든 마음의 예술이라는 것이다.

마음의 예술! 조선시대 미술품에 서려 있는 그런 아름다움의 가치를 처음 발견한 것은 누가 뭐라 해도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였다. 그런데 때마침 야나기가 세운 도쿄 일본민예관의 한국미술소장품들이 모처럼 오사카 일본민예관에서 열리고 있는 것은 안복(眼福)중의 안복이었다.

야나기가 수집한 조선민예품들은 결코 고가품이 아닌 도자기, 목기, 상자, 소반, 등잔, 떡살, 민화 같은 옛 서민들의 생활용품들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낡고, 허름하고, 부실하고, 기교가 구현되지 않은 일상용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야나기는 삶의 체취가 진하게 배어 있는 잡기(雜器)속에서 오히려 보편적인 미적 가치를 발견하였던 것이다. 그는 궁중의 화려한 은촛대의 아름다움보다도 살림때가 배어 있는 나무 부엌등잔에서 더 깊은 미적(美的) 법열(法悅)을 느낀다고 했다.

전시장을 가득 메운 280점의 조선민예품들은 야나기가 주장한 인간의 따스함, 삶의 질박함, 정신의 고귀함들이 이론이 아니라 물증으로 그렇게 제시되어 있었다.

전시장에서는 참으로 진지하게 작품을 감상하는 일본인 관람객들을 볼 수 있었다. 이국(異國)의 옛 유물이 왜 그토록 그들을 감동시키고 있는 것일까. 사람들은 생리적으로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선망한다. 내가 반 고흐나 램브란트의 그림 앞에서 오금이 떨리듯 일본인들은 조선의 도자, 조선의 민예에 그렇게 심취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역사적 상처 때문에 일본에 있는 한국문화재를 좋은 눈으로 보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오늘의 일본은 한국의 옛 유물을 국적을 떠난 세계문화사적 지평에서 그렇게 즐기며 배우고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이 지닌 의미를 이젠 우리도 진지하게 생각해 볼 때가 됐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렸다.

(兪弘濬/명지대 교수ㆍ미술사)

발췌/ 조선일보

사진설명 :
‘마음의 도자기 ’전에 나온 ‘철사 호록문(鐵砂虎鹿文)항아리 ’.17세기 후반(위).
‘이조의 공예 ’전에 나온 ‘투조(透彫)12각 밥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