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제5시기(1879-1896) 카를로 베네딕트 지노리 리시(Carlo Benedetto Ginori Lisci)
 제5시기는 로렌조 2세의 장남 카를로 베네딕트가 운영권을 승계하였으며 지노리 자기공장의 번성기라 할 정도로 대내외적으로 많은 성과를 거둔 시기였다. 특히 당시의 공장장 파올로 로렌치니(Paolo Lorenzini)는 선대로부터 이어진 40여 년의 운영 노하우의 구현과 공장의 기계화 등으로 생산력의 향상은 물론 나폴리, 토리노, 밀라노, 볼로냐 등지로 매장을 늘려갔다. 또한 선대의 방침을 계승하여 1879년 시드니, 1881년 멜보른, 1884년 리오데쟈네이루 등의 만국박람회에 출품하여 국제적인 명성을 쌓아나갔다.
 이와 같은 운영상의 발전 외에도 제품의 디자인 개발을 위한 노력이 지속되었다. 특히 전통양식의 절충과 복고 등의 유행을 민감하게 반영하여 르네상스 양식을 모방하거나 「그로테스크」라고 하는 고전주의 회화적 전통에 의한 장식을 재흥하여 표현하였다. 주로 역사나 신화를 주제로 하고 신선한 색채감각과 선적 묘사가 돋보이는 제품이 이 시기의 특징이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사보이아 왕가의 움베르토 1세가 주문했던 약 600개의 디저트 세트로서 커피컵만 해도 100개에 이르렀다. 접시에는 불규칙하게 배치된 꽃과 잎, 곤충 등이 금색으로 경쾌하게 채색되어 있다.<그림 1, 2>

(그림1) 사보이아왕가의 움베르토 1세를 위한 식물과 잎 문양 디저트접시, 지름 21㎝, 제5기(1880∼1884년), 지노리 作

(그림2) 사보이아왕가의 움베르토 1세를 위한 열매와 잠자리 문양 디저트접시, 지름 21.2㎝, 제5기(1880∼1884년), 지노리 作

 또한 베낫사이(Benassai)가 장식한 높이 175cm의 「거인」이라고 불리는 유명한 항아리와 장식가 치니(Cini)와 모란디(Morandi)에 의해 제작되었던 루벤스 그림의 일부를 묘사한 큰 항아리 등이 대표적이다.
 당시 돗챠자기공장은 연간 1000만개의 제품을 생산할 정도로 최고조에 도달했으나 1891년 공장의 중심인물인 파올로 로렌치니의 죽음에 의해 위기의 상황을 맞게 되었다. 카를로 베네딕트후작은 로렌치니를 대신할 만한 유능한 사람을 찾을 수 없었고 후작 형제들간의 반목으로 사업체는 분할될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1737년 카를로 지노리에 의해 설립되었던 돗챠자기공장은 약 150여 년의 역사를 끝으로 1896년 줄리오 리차드(Giulio Richard)의 리차드도자기회사와 합병하여 오늘날 리차드 지노리라고 하는 세계적인 브랜드가 탄생하게 되었다.

4. 리차드지노리도자기회사(La Societ  Ceramica Richard-Ginori, 1896∼)

 돗챠자기공장과의 합병 이전, 리차드도자기회사는 일용품 도자기, 도제(陶製) 부품, 사암질 도기, 내화성 제품, 그리고 도제미술품을 생산하고 있었다.
 합병 이후, 회사는 대기업화 되었고 생산체제도 대폭 조정되어 경질의 다공질도기는 산 크리스트포로공장으로 집중되었고 돗챠공장은 자기생산을 특화함으로써 과거의 영예를 지속할 수 있게 되었다.
 리차드지노리도자기회사(이후 지노리사라 약칭함)의 탄생은 공교롭게도 유럽 장식미술의 전환기와 일치하고 있다. 당시에 나타난 새로운 꽃양식은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최초로 보여졌고, 서서히 이탈리아로 유입되어 1902년 토리노 박람회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지노리사도 예외일 수는 없었기 때문에 사회와 수요자가 요구하는 새로운 디자인으로 박람회에 참가하였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은 공장장 루이지 다치니(Luigi Tazzini)와 디자인 주임 지오반니 부파(Giovanni Buffa)였다. 그들은 아르누보적 선과 플로랄 패턴을 기본으로 형태와 장식을 조정하였고, 형태와 장식이 일체화된 디자인이라는 아르누보의 근본 원리에 의해 전통적인 형태를 변화시켰다.
 당시의 작품 중 현재에도 호평을 받는 우아한 형태를 가진 자기가 돗챠미술관에 보관되어 있다. 1902년경 제작된 「공작의 항아리」<그림 3>와 「삼미신(三美神)의 꽃병」<그림 4>으로서 전자는 115cm의 높이에 두 마리의 공작이 형태의 중심을 이루며 항아리 전체를 긴 꼬리로 감싸고 있다. 후자는 마치 조각과 같이 정교한 아름다움이 있으며 세 명의 여신과 긴 옷의 주름이 매우 입체적으로 처리되어 있고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1896년 이후에는 조직구조의 변화가 일어나며 디자인과 생산의 방향을 결정하는 아트 디렉터가 등장하게 되었다. 특히 지오 폰티와 지오반니 가리볼디라는 걸출한 인물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그림3) 삼미신의 꽃병, 높이 40㎝, 제5기(1900년대 초), 지노리 作

(그림4) 공작의 항아리>, 높이 20㎝, 제5기(1900∼1902년), 지노리 作

1)아트디렉터 지오 폰티(Gio Ponti, 1923-1930)
 1920년경, 지노리사는 조직을 재편성하고 모든 공장의 예술적 방향을 통일하였다. 당시 밀라노의 젊은 건축가 지오 폰티를 아트디렉터로 채용하여 20년대와 30년대 돗챠자기공장의 생산 방향을 결정함에 따라 제품은 높은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1891년 밀라노에서 태어난 지오 폰티는 20세기 이탈리아의 건축과 디자인계의 1인자였다. 성격이 다르긴 했으나 그의 활약은 동시대의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ioyd Wright)와 비교되어 평가되고 있다. 그는 1차대전과 2차대전 사이의 20년 간, 초기에는 역사주의적 틀 안에서 신고전주의로, 다시 합리주의로 이행하였고, 잇따른 제 2차대전 후 20년 동안 단숨에 독자적 모더니즘 세계를 개척하였다.
 1920년대 지노리사에서는 제 1차대전의 상흔을 극복하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역사적 전통주의와 근대주의 또는 국제주의라는 두 개의 예술사상이 경쟁하고 있었으나 폰티는 이 두 가지의 경향을 모두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다시 말해 당시는 역사로 회귀하려는 희망과 새로운 장식미술(아르데코)의 도래라는 양립된 면이 있었으나 폰티는 유럽의 세련된 「아르데코」 스타일을 표방하는 작품으로 지노리의 방향에 명확한 비젼을 주었다. 도자기에 관한 「신고전주의」라고 통하는 폰티의 디자인은 그가 선호했던 그리스, 로마, 에트루리아 고고학에 기반한 컵, 항아리, 앙포라 등의 포름을 따르는 매우 세련된 수준에 도달하였다.
 폰티의 전통주의는 단순한 전통의 재현이 아닌 전통주의를 새로운 시대의 양식 아르데코로 감싼 것으로서 절충주의라고 하기보다는 두 가지를 초월한 그만의 개성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폰티의 아르데코에로의 접근은 작품의 양식화와 전통적인 형식을 준수하는 것으로서, 예를 들어 확대된 인간상이나 크고 날씬한 수렵견 그레이 하운드 등 유행하는 동물을 이용하여, 물체의 실제 크기와 관계없이 자유롭게 구성하는 것이었다. 폰티가 과거의 기억을 찾아내서 현대의 양식과 언어로 전환시키는 감각적인 작품을 창조한 것은 「나는 현대의 문화에 과거, 현재, 미래가 동시에 존재한다고 하는 이념을 찾고 있다」라는 자신의 생각을 입증하는 단편이라 하겠다.
 폰티가 지노리사에 있었던 것은, 지노리사를 떠난 후의 긴 활동기간을 볼 때 일시적인 젊은 시절의 경력으로서, 그것은 곧 밀어닥칠 자유로운 문화의 시대, 요컨대 제 2차대전 후 20년 간 전개된 그의 문화적 소신의 근원이 되었다. 1977년에 쟌 카를로 보야니(Gian Carlo Boiani)는 파엔쟈에서 열렸던 그의 전람회 서문에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폰티의 세련된 작품은 그 때까지 이탈리아에 존재하지 않았던 아르데코로 가득 차 있는 듯이 보여진다...... 또한, 폰티는 1900년대 노베첸토(Novecento) 운동의 수사법(내셔널리즘, 질서로의 회귀, 이탈리아의 전통재건)으로부터 빠져나갔던 인물이라고 감지된다. 그리고 유럽의 분위기가 느슨하고 우유부단했기 때문에 그는 현대의 시작을 준비하게 된 것이다.」
 지노리사에서의 폰티의 활약은 그가 떠난 후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몇몇 디자인은 지금까지도 생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폰티의 비젼에서는 공업적인 부분과 예술적인 부분이 공존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매우 명확히 드러난다. 또한, 폰티는 대량생산이 사람들에게 퀄리티를 알리는 수단이 된다는 것을 분명히 확신하고 있었다. 「퀄리티」라는 말은 폰티의 논문에 자주 등장하는데 이것이 바로 소재에서, 모양에서 그리고 형태에서 폰티로서는 도달하지 않으면 안 될 목표였다. 이러한 철학 덕에 돗챠의 자기는 1920년대와 30년대에 높은 퀄리티로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하는 일이 가능했던 것이다.

2)지오반니 가리볼디와 1900년대 후반(Giovanni Gariboldi)
 지오반니 가리볼디는 지오 폰티의 중요한 협력자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폰티와 같이 밀라노 출신의 건축가였고 1930년대부터 60년대에 이르기까지 지노리사를 이끌어갔다.
 폰티와의 공동작업은 그가 청년이었을 때 시작되었다. 가리볼디의 이름은 1928년『도무스』에 게재되었던 지노리의 광고에 디자이너로서 기획자 폰티와 나란히 등장한다. 그는 폰티가 아트디렉터로 근무하던 말기에 제품기획자로서 활동을 시작했으며 폰티의 지도에 힘입어 자신의 성장 발판을 마련하였다.
 1930년대에는 다양한 세트나 사슴, 말 등 동물 형태의 장식물뿐만 아니라 사슬모양, 직물, 띠나 불규칙하게 비틀린 신체에 의해 장식된 항아리를 포함하여 사암의 도제품을 많이 디자인했다.
 1940년대에는 그의 디자인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의 하나인 「바다의 알레고리」를 제작하였다. 그가 자주 이용했던 기법은 저부조의 백색문양으로 장식하는 것이었다. 이 시기에는 촘촘한 홈으로 장식되어 표면에 빛의 음영을 만들어내는 항아리 시리즈도 등장하였다.
 1946년, 지오반니 가리볼디는 지노리사의 예술센터장으로 임명되었다. 그의 지도 하에서 지노리는 50년대의 기능주의와 인스탈레이션 디자인의 규범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또한 1949년에는 알프레드 브라운(Alfred Brown)과 함께 자기제품을 기획하였다. 「성피에트로」의 조상, 「세계」의 상자, 그리고 금색의 부조가 들어간 큰 「건반」등으로서 현재 돗챠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제품의 모양과 마무리에서 높은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폰티의 철학을 볼 수 있다. 또한 「바로크」타입의 세트 개발을 시도하여 1954년에는 가운데가 부푼 모양의 티세트 「우르피아(Ulpia)」를 발표하였다.
 1950년대 중순부터 디자인의 퀄리티는 물론 '보관할 때 넓은 공간을 차지하지 않을 것', '닦기 쉬울 것', '다루기 쉬울 것(잡기 편한 손잡이와 안정된 뚜껑)', '충격에 대해 견고할 것' 등과 같은 기능에 대한 새로운 기준이 등장하였다.
 이에 대해 가리볼디는 「스탠다드」, 「코로나」, 「하나 이상의 것(Uno pi  uno)」<그림 5> 등의 시리즈를 발표하여 일상생활과 함께 하는 제품개발에 노력하였다.  

(그림5) 커피세트<코론나>와 <우노 퓨오 우노>, 높이 11.5㎝, 1960년대, 지노리 作

 1969년 가리볼디의 「에코(Eco)」는 같은 시기에 제작된 지노 칸파나(Gino Campana)의  「노래」와 같이 세트의 전통적인 구성원칙을 깨고 세트를 구성하는 각각의 요소를 단품으로 구입하여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지오 폰티나 지오반니 가리볼디는 돗챠자기공장이 만들어오던 전통적인 테이블세트의 생산과는 별도로 새로운 디자인들을 개발함으로써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지노리사만의 독자적 영역 구축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들의 활약은 기업에서 디자이너와 제품기획자가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이 생산과 마케팅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교훈적 사례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뱀모양 손잡이의 큰 항아리>, 높이 72㎝, 제4기∼5기(1875∼1900년), 지노리 作

<임페로>, 높이 24㎝, 제5기(1900년대 초), 지노리 作

<메디체 항아리>, 높이 45㎝, 제5기(1900∼1910년), 지노리 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