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한국공예학회 춘계 학술 대회)

[문화와 문화산업] - 한양대학교 교수 추원교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조카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 시대를 산 사람이 아니면 시대의 변화를 좀처럼 알 수 없다."

   고했다.
   할머니나 어머니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들으면 실감이 나지 않는 것은 다빈치의 시대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어제가 있어 오늘이 존재하는 것처럼 내일은 오늘로부터 있다.
   이렇게 연속되는 가운데 문화란 축적되고, 체계화되지만 변화하는 속성을 가졌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무용담도 "그 까잇-꺼"일 따름이다.

   문화란 라틴어의 Culture, "육체나 정신적인 재산을 돌보다"의 의미로 17세기 이후 유럽에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1871년 Edward Tylor는 문화의 정의를 《Primitive Culture》에서 총체론적 관점으로 "지식, 예술, 법률, 도덕, 관습 및 사회의 한 성원으로서 인간에 의해 획득된 모든 능력과 습관들을 포함하는 복합적인 것" 으로 보았다.

   "과천 복숭아 밭 아래 보신탕집은 /보신탕 맛보다/ 복숭아밭에 신경을 더 쓴다."

   1994년 미국 월트디즈니사는 '라이언 킹'으로 20억을 벌었는데 정작 영화로는 7억 7천만 달러였다. 2002년 한국에서 오페라 유령으로 200억 수익을 올렸으며, '태극기 휘날리며'는 개봉 39일 만에 100만 관객을 넘었다. 산업매출은 1499억이지만 경제효과는 4600-5000억이다. 순수제작비 147억원의 37배 이득이다. 한국 영화산업의 통계가 아직 확실한 신뢰성을 주지 못하고 있지만 문화적 소재가 21세기의 대박을 터뜨리는 존재임은 확실히 증명한 셈이다.

   클린턴은 교육정책 보고서에서 '창조적 미국(Creative America)'을 주장했는데, 21세기는 문화의 세기가 되기 때문에, 미국이 지금처럼 세계시장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창의력과 상상력을 길러주는 교육의 필요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일본은 1996년 'ArtPlan 21'을 내놓고 실천에 들어갔다. 지방 공업도시이던 스페인 빌바오에 구겐하임 미술관이 들어섬으로써 도시 이미지와 환경을 바꾼 것은 물론 스페인을 세계 관광객 1위의 나라로 굳히게 했다. 핀란드에서 대통령 관저를 짓고, 독일에서는 맥주와 철강의 도시이던 도르트문트 뷔르크 거리에다 심포니 전용홀을 세웠더니 섹스 숍이 사라지고 고급인력의 유동인구가 늘어났다.

   문화가 경제적 트렌드를 바꾸어 가고 있다. 일본 소니가 미국에 진출하기 전 '나비부인'의 미국 공연의 스폰서였음은 잘 알려진 일이다. 진주만 공격으로 감정이 상했던 미국인들이 '나비부인'을 본 다음에 반일감정이 햇볕에 서리가 녹듯이 사라졌다. 그 다음에 소니는 미국시장에 워크맨을 내놓았다.
   그러나 섣부른 지식과 문화적 이해로 실패한 경우도 많다.
   미국은 베트남에서 게릴라전 때문에 실패하였고, 스페인에서 '나비부인'을 공연할 때, '나비'는 스페인어로는 '초호'로, 이 말이 여성 성기의 뜻이어서 '초이초이'로 했더니 의미전달이 제대로 안되었다.
   까르푸는 중국 상해에서 2003년 40주년 기념으로 빈민들에게 아침을 제공하였다. 그랬더니 중국인들은 '1위엔(1백 50원)도 안되는 것으로 거지 취급했다'고 비난했다. 서구인이라면 잘 먹고 출근했을 것이다.
   아랍전을 시작하며 미군은 확성기에다 '이라크 남자는 임포텐스!' 라고 큰소리로 떠들었다. 이 말에 분함을 참지 못하고 숨어 있던 벙커에서 튀어나온 이라크 군인들은 그 자리에서 브래들러 장갑차의 총알밥이 되었다. 그래서 미국은 예상보다 순조롭게 승리할 수 있었다. 아랍 남자들은 성적 모욕을 참지 못한다는 문화적 심리를 이용한 것이다. 비아그라는 세계에서 아랍지역이 제일 잘 팔린다. 이라크인에게 미국에 대해 물으면 'No Goog!'이지만 주류 판매가 금지된 후에도 음료는 펩시콜라, 담배는 말보로를 피우고, 워크맨으로 팝송을 듣고, 리바이스를 입고 있었다. 전쟁 전에 대중문화 속에 이미 미국 문화가 침투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몇 백년 문화로 수 천년의 역사를 허물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어느 민족이 문화 상실을 쉽게 허락해 줄 것인가.

   문화 산업은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이므로 모든 매체와 장르가 협력하여 공동 제품을 내놓아야 한다. 문화산업은 자본, 기술, 인력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공예산업은 시장경제에만 맡기기 어려운 산업이다. 조선시대 공장제(工匠制) 이전에 신라, 고려 시대에도 공예산업을 국가에서 통제하고 관리하는 제도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국가에서 뒷받침을 안해주니 갈수록 영세해 간다. 이태리는 보기아스가 통치하던 30년 동안 테러, 살인, 유혈사태가 아주 극심했지만 이 때 미켈란젤로와 다빈치를 배출했고, 르네상스를 열었다. 그러나 스위스는 5백년 동안 평화를 유지했으나, 뻐꾸기 시계가 고작이란 평을 하는 사람도 있다.

   덴마크 미래학자 롤프 옌센은 '21세기는 꿈과 감성을 파는 시대'라 하였다.
   미국의 맥도널드가 찬안문 광장 귀퉁이에 들어선지 오래고, 프랑크 푸르트 공항 한 가운데 일본 스시집이 있고, 스페인 하몽이란 식품이 선원들에게 에너지를 주었기에 신대륙을 발견하는 항해를 할 수 있었고, 파리바게트 덕택에 아프리카를 정복할 수 있었다. 이제 타이타닉을 보고 우는 데 지역적 차이가 없다. 터어키 케밥, 이태리 피자처럼, 한국의 비빔밥도 세계인이 즐겨먹을 수 있어야 세계적인 음식이 된다. 우수한 문화를 간직하고 있으면 유물이고 유산일 뿐이지만, 문화는 공유하고 같이 나누었을 때 인간적 감성의 교류가 시작되어 상호이해의 바탕이 된다. 그와 함께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미국의 대중주의(American Populism)은 당분간 지속되겠지만, 한류열풍은 불안하다. 일본에서 '겨울연가'로 한국 이미지가 바뀌고, 욘사마가 인기를 누려 양국 관계에 경제적, 문화적으로는 큰 효과를 가져다 주었다. '대장금'은 홍콩과 중국에서 50%의 시청률을 보였으며 팬들 때문에 아시아 스타가 된 배용준이나 이영애가 국빈 경호를 받았고, 이전에도 대만에서 송혜교가 모델로 나온 화장품이 인기를 끌었다. 보아, 이효리 신드롬, 영화1000만 관객시대는 언제까지 계속될지 불분명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트롯트 박자와 가사가 구절마다 가슴에 와 닿는다. 동 아시아 국가사람들은 지난 세기동안 우리가 그들과 마찬가지로 힘들었음을 안다. 너희들도 '우리와 비슷하다. 따라잡을 수 있다'고 한번쯤 생각한다. 이 열풍이 인도와 모로코에서도 가능해야 세계적으로 부는 한류열풍일 것이다.

   헌팅턴은 《문화의 충돌》에서 이 시대가 글로벌리즘, 종족주의, 신앙, 가족, 혈통, 언어를 지키려는 경향이 강해지는 신식민주의(Neo-Colornial)의 대두를 우려했다. 지금 세계화는 세계적인 화두이다. 세계화가 축복인지 알 수 없으나 앞서 유럽은 공동체를 결성했다. 세계는 따로 움직여온 부분을 신체조직처럼 연결해 상호의존성을 갖도록 통합해 최적의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하는 글로벌라이제이션을 실현해가고 있다.
   미국의 글로벌 경쟁력은 점차 떨어질 것이고, 앞으로 상호의존적 글로벌 통합체(global interdependent unity) 개념이 등장하고 3차원 가상공간을 통해 국경을 뛰어넘는 사람들이 상호의존성을 갖게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이는 글로벌 네트워크 시스템 출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전통적 의미의 지배나 통치개념이 사라지고 패권국가 개념도 무의미해 질 것이다. 장 피에르는 '문화의 세계화는 허구다. 문화상품의 세계적 유통일 뿐이다'고 지적한다. 또 중국과 한국의 경제곡선 상승을 보고 어떤 외국 학자들은 문화적 패권은 여전히 그들에게 있다고 한다. 아시아는 젊은층 문화를 주도할 3S(Screen, Sports, Sex) 산업이 없다는 것이다.
   난치병 치료의 새 기술을 연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신화는 0.1mm(100㎛)의 난자를 탁구공 다루듯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매직핸드(마법의손)을 가진 한국인이었기에 가능했다. 황교수 연구팀이 5∼10분에 하는 일을 미국과 선진국에서는 숙련된 연구원도 조작 시간이 1시간 가까이 걸린다고 한다. 마지노선 15분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이 특유의 손기술에 있다. 성경에도 "공예가는 손으로 솜씨를 인정받고, 정치가는 말로서 명성을 얻는다" 하였다. 훌륭한 재질을 타고난 우리다. 우리는 많은 무형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 것은 훌륭하다고 내세우면서도 지켜나가려 하지 않았다. 조선시대 통신사들도 일본을 낮게 평가하여 일본에 가서는 물건을 가져오지 않았다. 반대로 일본은 전통 기예를 최고의 가치로 치고, 최고의 감각을 생활로 소유하는데 긍지를 느낀다.
   각 국가는 평화의 유지가 서로에게 경제적 이익이란 인식을 하고 있다. 더불어 사는 세상이 되었다.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공유할 때 참다운 글로벌라이제이션이 이룩될 것이다. 우리의 것을 소중히 알되,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 우리 것은 좋은 것이라는 명제에 너무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공예품에는 한국문화가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하며 맛과 멋을 느끼게 하여야 한다. 너무 지나친 작위적인 문화는 우리 가슴을 거칠고 허하게 만들 뿐이다. 기 소르망이 지적한 바 있지만 우리는 전통과 아방가르드를 결합할 수 있는 뛰어난 예술가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동시대의 창작문화 보다 너무 민속적인 것에 치중하여 한국문화를 내세우는 경향이 짙었다. 이제 우리 공예문화를 새로운 산업으로 전환시켜 나가는 아이디어와 디자인 그리고 유통망을 갖추어야 한다.

   "자기 고향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도 상냥한 초보자다. 모든 땅을 자신의 고향으로 보는 사람은 이미 강한 사람이다. 그러나 전 세계를 하나의 타향으로 보는 사람은 완벽하다"
- 빅토르 유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