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조선백자를 품은 민예적인 디자인
2018-12-10 (월) 11:17 조회 : 103

조선백자를 품은 민예적인 디자인

야나기 소리 주전자


최범

디자인 평론가,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 디자인인문연구소 소장



둥그스름한 외형, 넉넉한 품새, 버선코처럼 살짝 올라온 주둥이 … 영락 없는 조선백자다.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걸까? 야나기 소리 주전자를 처음 봤을 때,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에 조선백자가 보이는 것일까. 첫 만남의 놀람과는 달리 추론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왜냐하면 야나기 소리는 야나기 무네요시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야나기 소리는 일본을 대표하는 산업디자이너의 한 사람으로서 아버지 무네요시의 뒤를 이어 일본민예관 2대 관장을 지내기도 했다. 소리의 아버지 무네요시는 누구인가? 바로 조선 공예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민예라는 이름을 붙였으며, 민예미학을 정립하고 민예운동을 벌인 사람이 아닌가. 그러니까 민예의 아버지 야나기 무네요시의 아들, 야나기 소리의 디자인에서 조선 민예, 그것도 야나기가 극찬해 마지않은 백자의 형태를 발견하는 것은 놀랍기는커녕 지극히 자연스럽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야나기 소리가 아버지의 안목과 활동력을 물려받았을 것이라는 점을 쉬이 짐작할 수 있다. 사실 야나기 소리의 디자인을 보면 그의 아버지가 주창한 민예정신을 잘 계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디자인은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것보다는 수수한 생활용품을 위한 것이 많다. 바로 야나기 무네요시가 '게테모노(하찮은 것)' 라고 한 것의 아름다움을 추구 했음을 알 수 있다. 야나기 무네요시의 민예사상은 한마디로 말하면 생활 속의 평범한 물건들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러한 물건들로 둘러싸인 세상이야말로 아름다움의 나라, 즉 미의 왕국이며 그러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생활 구석구석 사소한 물건에서도 섬세한 미적 감성을 발견할 수 있는 일본은 야나기 무네요시의 사상이 구현된 나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일본 디자인에는 바로 야나기 무네요시에 의해 발견된 조선 공예의 미학이 기반되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야나기 소리 주전자 안에서 조선백자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일본 디자인 안에 조선 공예가 있다.' 일단 이러한 나의 관찰이 적실하다면, 이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나의 이러한 해석에 대해 많은 한국인은 당황하거나 불편해할지도 모른다. 아마 한국인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일 것이다. 하나는 우리가 일본 디자인의 바탕을 전해주었다는 점에서 뭔가 뿌듯한 자부심을 느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일본이 한국 공예의 알짜를 훔쳐갔다고 비난하는 것이다. 과연 어떠한 태도가 적절한 것일까. 나는 둘 다 아니라고 생각한다. 먼저 조선 민예의 미를 발견하고 그 정수를 가져가 자신들의 디자인 자원으로 삼은 것은 일본인이다. 조선 민예를 만든 것은 조선 사람이지만 그것에서 미를 발견하고 핵심을 추출해 활용한 것은 일본인이다. 야나기 무네요시야말로 그러한 발견의 미학을 보여주었다. 다음으로 일본이 조선 민예를 훔쳐갔다는 생각도 옳지 않다. 그랬다 하더라도 그것은 도덕적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그들의 문화적 성취로 봐야한다. 문화에는 도둑질이라는 것이 없는 법이다. 남의 좋은 것을 배우고 가져가는 것이 상책이며 능력이다. 그런 면에서 따지는 일본이 한국에서 가져간 것보다 한국이 중국에서 가져온 것이 훨씬 더 많을 것이며, 아니 근대 이후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섭취한 것도 엄청날 것이다. 그러니 문화에서 품쳐갔는니 어쩌니 하는 것은 애초에 이야깃거리가 되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은 일본 현대 디자인을 통해서라도 조선민예의 정수가 계승, 보전되는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어차피 한국 현대 디자인에서 그것을 찾을 수 없는 바에야 말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문화의 혈통은 종족의 혈통과 일치하지 않는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문화면으로 보았을 때 일본 디자인이 한국 공예의 일부를 계승했다고 생각한다. 야나기 소리 주전자야말로 명백한 증거다.



공예+디자인 No.034

p. 005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