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호> [일본도자해설] 비젠도자 화병 1999년 11월 30일 

비봉의 일본도자

비젠의 도자(備前燒) - 실로 불과 흙만의 승부세계

여기의 작품은 일본의 유명한 도자중의 하나인 비젠도자이다. 그리고 가장 역사가 오래된 도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고 또 지금도 가장 많은 현대작가수를 보유하고 있는 도자로서도 유명하다. 일본의 오까야마현의 지방을 대표함과 동시에 이제는 전세계로 그 전시회를 가짐으로써 비젠야키(Bizenyaki)라는 이름은 서양인에게도 많이 알려진 도자이다. 나는 이 비젠을 볼때마다 마음한구석 텅비는 듯한 느낌을 가진다. 흔히들, 일본의 도자연구가나 도예작가 그리고 평론가 할 것없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조선은 유약을 일본은 흙을 택했다. 그리고 조선은 하늘로부터 흙을 받았기에 그 흙만으로도 도자가 구워지고 발달했지만, 일본은 도자를 굽기에 흙으로부터 버림받았기에 도자기발전이 느렸다. 등등의 말들이다.

과연 그러한가? 그것은 일본이 고대의 조선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들에 의해서 삼국시대의 백제인들의 도예가 전해진 그 증거가 여기 이 비젠에 고스란히 남아있음에도? 그리고, 우리의 고령토와 달리 아마쿠사석(天草石)과 같이 그냥 잘게 부수어 수비만하면 바로 물레에서 구워낼 수 있는 최상의 백토 아니 백석이 있어, 그 정교한 히라토(平戶)도자를 구워내었음에도? 그럼, 그뿐인가? 이 비젠과 같은 지역은 철분이 적당히 냣여 있어, 그냥 굽기만 하면 웬만한 도자기와 부딪쳐 깨지지 않을 정도의 단단함과 보기 좋게 화염에 거슬린 자국과 장작의 재가 가마속에서 내려앉으며 흘러내린 자연유의 빛깔이 절묘한 조화를 지닐수 있게되는 이러한 양질의 흙! 삼국시대 토기를 보면 우리나라지역별로 어느정도 차이가 날진 모르지만 신라토기처럼 비슷한 야끼시메(燒締; stoneware라고도 하며, 구워서 단단하게 만들어진 토기를 뜻하지만 일반적인 토기(구석기시대)와 구분짓기 위해 이렇게 부름)라 할지라도 천편일률적으로 검은 빛을 내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기에 한계가 있는 흙과는 기본적으로 차이가 있지 아니한가?

그런 의미에서 일본전국의 도자흙은 그들의 흙이 없거나, 나빠서가 아니라 그것을 보고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 없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이라는 플랜트적인 기술이전이 없었다면, 여전히 일본땅은 흙이 없어서라는 넋두리를 할지도 모르지만.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 비젠화병(일본의 다도계에서는 화병이라 하지 않고 花入(하나이레)라고 함)은 전통적인 다도계에서 사용하는 형태의 하나인 통형화병이다. 이 통형의 기본 원형은 물론 일본과 같은 남부지역에서 볼수 있는 통이넓은 대나무화병이다. 아울러 이 도자의 높이는 25.5센치이고, 작가는 비젠도자의 이대산맥이라 할수 있는 후지와라유우(藤原 雄; 인간국보)의 작품이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古비젠의 맛을 한층더 표현하는 또한사람의 인간국보인 가나시게도요우(金重陶陽)의 작품처럼 조용한 멋이 떨어지고, 너무 불색의 표현이 강해 빨갛게 까지 표현된 부분이 마음에 걸린다. 물론 이러한 작품성향은 후지와라 유우를 비롯한 그 제자군단의 독특한 표현방식임은 부정할 수 없지만 말이다.

참고로 비젠도자의 기원은 전술한바와 같이 백제후예에 의한 일단의 집단에 의해 발생하였다고 볼수 있는데, 임진왜란 이전까지는 거의 옹기와 같은 형태인 대형 독을 주로 생산하였고, 그 이후 다도구를 본격생산하며 일약 일본 다도계에 진출하며, 화병과 다도에서 사용하는 미즈사시(청수항아리의 역할)부문에서 부동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비젠의 작가들은 흙이 주는 변화에 내어 맡기는 부분이 많은 만큼 손쉽게 작품활동을 하기도 하지만, 워낙 흙의 양질에 따른 작품의 완성도가 판이하기 때문에 그 만큼 좋은 흙을 확보하지 못한 작가들이 고생하는 면이 많기도한 도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