滿礎 粉靑沙器展

만초 이명배씨가 지난해 가을 우리나라 굴지의 백화점인 롯데에서 그로는 국내 처음의 개인전인『조선조 청화백자 명품 재현전』을 갖더니 뒤미쳐 올해 세밑에서 새해 첫 모리에 걸쳐 같은 자리에서 같은 백화점의 초대전으로 분청사기전을 갖게 되었습니다.
만초는 사기를 보는 안목이 까다롭기로 알려진 일본에서도 권위가 있는 공모전에서 대상을 세 번이나 차지하고 금상을 두 번 탔으며 개인전도 여섯 번이나 연 바가 있어서 이름이 널리 알려졌으나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지극히 한정된 동호인이나 고미술상인을 제외하고는 거의 무명에 가까운 도예가로서 그를 두고 백화점이 단 한번의 개인전 끝에 불과 한 해를 두고 가장 붐비는 한 대목에 초대전을 갖기로 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생각됩니다.
전해 듣기로 만초의 지난 전시에서는 출품작들이 조선시대의 명품들과 너뭄나 방불하여 진위를 가리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하며 작품들도 단시일 안에 거의 동이 나고 많은 관람자들의 감탄과 공감을 불러 일으켰던 것은 말할 나위가 없고 신문과 방송에서도 크게 보도를 했던 것이니 이례적인 초대전의 까닭도 짐작이 가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고려ㆍ조선 시기의 사기들이 지니는 아름다움에 홀려서 그 속에 깊숙이 닮아진 그윽한 뜻을 헤아리고자 전국의 산과 들을 누비며 흙을 찾고 발바닥에 군살이 오르도록 물레를 차며 질물을 다스리고자 몇 날 며칠을 두고 흙 범벅이 된 다음에야 비로소 글에 불을 지피게 되는데 그나마도 건질 수 있는 사기보다 깨어 버려야 하는 사기가 더 많아서 덧없이 사기무덤만 살쪄가는 어려움들을 수 없이 참고 견디며 20여년의 세월이 하루같았던 만초로서는 오해려 이번 일이 당연한 것으로 마음 속으로 치부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세속의 온갖 것을 외면하고 또 세속으로부터도 소외되면서 살을 저미는 듯한 시련과 고난이 겹쳤던 허구한 나날을 곁눈한번 팔 줄 모르고 외길을 거니느라 가사와 가산이 함께 풍지박산이 되는 고비에서조차 만초는 의연히 첫 다짐을 굽힐 줄 모르고 오늘에 이릅니다.
평소 말이 없는 만초는 안으로 하늘로부터 점지받은 뛰어난 자질과 남다른 열정과 끊임없는 노력 그리고 알뜰한 내조에 힘입어 누구나 쉽게 넘볼 수 없는 한 경지에 이르렀음에도 스스로를 내세울 줄 모릅니다.
되려 만초는 지난 전시 때 소개 책자의 머릿글인 『부끄러운 말씀』에서 『염담하기 푸른 하늘과 같고 무심하게 흐르는 물과 같은 청정한 심성으로 물레를 돌렸던 옛 도공의 마음씨를 내가 어찌 가맂 수 있겠으며 한 왕조의 그 쓰라린 세월을 들어 이룩했던 '한량없는 아름다움과 쓰임새' 그리고 아득한 시공을 내가 어찌 넘어설 수 있겠습니까.』하고 겸양하면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저를 보살펴 주신 여러 마음들처럼 한없이 따뜻하고 포근한 백자와 소박하고 아름다운 분청에 전심하고자 합니다.』며 훗일을 기약했습니다.
그 훗일에의 기약이 이토록 빨리 그것도 초대전의 형식으로 실현을 보게 된 것도 기쁘거니와 만초의 사기 가운데서도 분청사기의 득의의 진면목을 보여왔던 것을 생각할 때 이번 전시에 거는 기대도 커집니다.
더구나 지금까지의 만초는 선인들의 사기가 지닌 「빛깔과 모양새에서 빼박은 듯이 되살리는데」골몰해 왔으나 이번 전시에서야 비로소 지난 날의 분청사기를 바탕으로 삼고 그것을 재해석해서 현대생활에 긴하게 쓰일 수 있을 스스로의 사기도 곁들었다고 하니 이 새 시도를 특히 눈 여겨 보고자합니다.
무릇 한나라의 문화나 그 속의 한가닥일 도자공예에 있어서나 지난 날의 영광이 아무리 거룩했다손 쳐도 그것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어기탄 발전을 기대할 수가 없다는 것은 누구나가 다 알고 있는 일입니다.
우리 도자공예에 있어서도 지금까지는 정통의 재현에만 급급했던 나머지 그것을 딛고 널리 새로운 시류를 가려서 받아들여 다시금 삭이고 반죽을 해서 우리다운 것으로 또는 스스로 만의 것으로 재창조 함으로써 전통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 노력에 인색했습니다.
그런 안목에서 만초의 이번 전시를 통한 시도가 도예작가로서 보다 드 높고 싱그러운 창조의 전기를 이루고 나아가서는 우리 도예계 전반에도 오랜 늪에서 헤어나게 하는 새로운 계기가 되어 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절실합니다.
아무쪼록 되도록 많은 분들이 만초 이명배씨의 분청사기전을 그가 바라는 대로 『따뜻한 마음씨와 매운 눈길』로 지켜 보아 주시고 성원 있으시기 빌겠습니다.

1991년 세밑 예 용 해


분청사기박지연당초문장고(h:43cm)

분청사기박지연당초문항아리(h:74.5cm)

분청사기박지목단문항아리(h:53cm)

분청사기조동자선문항아리(h:37cm)

분청사기진사도문항아리(h:17/22/27.5cm)

분청사기회우문항아리(h:36cm)

분청사기인화문항아리(h:40cm)

분청사기인화문항아리(h:42cm)

청화백자운학문호(h:94.5cm)

청화백자당초문감항아리(h:22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