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길홍 - 원초적인 休驗의 확대

오늘날 우리의 도예는 크게 전승도예와 창작도예로 나누고 있다. 전통적인 방법을 원형대로 계승시키는 경향을 전승도예라 일컫고, 어떠한 의미로서 현대적 방법정신에 입각한 경향을 창작도예라 지칭하고 있다. 창작도예 가운데서도 우리는 두 가지의 태도를 엿볼 수 있는바, 도예의 전통을 현대적 의미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그 하나요, 도예 자체가 지니고 있는 보다 본질적인 문제에 과감히 접근하려고 하는 실험적인 경향이 또 하나이다. 전자의 경우는 현대적 미감이나 새로운 기술적 수용에 크게 의존하면서도 전통에 대한 애착을 내세우고, 후자의 경우는 전통이란 문제를 떠나서 도예의 보편적인 관념을 뛰어 넘으려는 의욕을 앞세우고 있다.

아마도 이러한 두 개의 방법적 전개는 도예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모든 전통적인 예술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국면이라 하겠다. 어느 방법이 옳으냐 하는 논의는 여기서 벌일 게재도 아닐 뿐 아니라 또 쉽게 결론 지워질 문제도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 할 수 있는 것은 이 두 가지의 방법적 전개가 공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한쪽에 치우침이 없이 밸런스를 유지할 때, 참다운 의미의 발전이 약속되지 않을까 본다. 밸런스를 유지한다는 것은 서로가 긴장된 관계에 있다는 의미이며 그렇게 되었을 때 올바른 방향설정이 가능할 것이 아닌가 본다. 가령 어느 한쪽의 방법만이 존재했을 때, 그것은 자칫 전통의 해석을 전승의 의미로 떨어지게 할 우려가 있으며, 지나친 실험의 의욕은 뿌리 자체를 흔들어 놓을 위험도 없지 않은 것이다. 왕왕 전통과 전승의 의미를 올바로 해석하지 못하는 경향의 작품들의 양상이 보여지고 있는 현상도 어쩌면 전통의 계승과 극복이라는 밸런스의 유지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도예가 한길홍씨는 전통적인 방법의 계승보다는 도예의 본질적인 문제에 먼저 부딪침으로서 도자기를 통한 창작의 의미를 추적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그의 작품에서는 도자기라고 하는 일차적인 기능의 문제가 크게 의식되지 않고 있음을 엿볼 수 있으며, 바로 그러한 기능을 지니므로 해서 비로서 도자기일 수 있는 것인데도, 그의 도자기들은 한결같이 그릇만으로서의 단순한 용도는 벗어나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그렇다면 그것은 기물 호서의 도자기라는 전통적 관념과 일반적 관념을 다같이 벗어난 것이 된다. 말하자면 그것은 그릇이라고 하는 용도의 목적에 따른 것이 아니고, 흙 그 자체가 자유롭게 유발시키는 하나의 해방된 형태를 추구하고 있는 경우라고 하겠다. 구분 적인 대상성을 벗어나고도 회화가 존재할 수 있듯이, 용도를 무시하고도 그것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때,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것은 흙이라고 하는 본질과 흙으로서 무언가를 형성시켜 간다는 인간의 행위의 의미일 것이다. 인류가 처음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들었을 때에도, 그릇이 갖는 기능에 앞서 먼저 부딪친 것이 이 문제일 것이다. 흙이라고 하는 재료가 갖는 물질성, 그리고 흙을 빚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만듦의 희열이 결과로서의 그릇, 완성으로서의 도자기에 앞서 체험되었을 것이다. 완성에 이르는 무수한 과정의 산물로서의 도자기 경우, 이러한 체험은 더욱 진한 것이었을 것이다.
한길홍씨의 작품에서도 우리는 흙을 흙으로서 들어냄과 동시에, 그것과 더불어 흙을 만지는 행위의 즐거움을 엿볼 수 있다. 말하자면 가장 원초적인 체험을 순수하게 들어내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흙이 갖는 원형적 감정이 유약처리에서나 손자국을 들어낸 표현적인 표면에서 진하게 나타나고 있다. 아울러 추상적 이미지에 의한 변화로운 장식성이 작품의 전면 또는 부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기물의 입체적인 형태와 기면의 관계를 유기적으로 조화시켜 주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이러한 관계 결코 한결같지 않고, 또한 규칙적인 것은 아니다. 기물의 형상에 따라서 자유로운 공간의 분할과 대비, 집합과 확산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고정된 확산인 결합이 아닌, 보다 동적 관계에서 일체감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성격 속에서는 입체의 표면을 장식했다기 보다는 장식이 입체화한 것으로 보는 편이 좋을 것 같이 생각되며, 그 자체는 공간 속에서 움직이는 조형언어로서 자립하고 있다고 본다.

물론 그의 방법에도 적지 않은 문제점들이 있을 것이다. 그 자신도 어느 완성을 내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동안의 과정을 보이고 싶다는 겸허한 태도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비단 그 개인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실험적 도예의 방법전체에 결부되어 있는 대변 일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업에서 엿 볼 수 있는 긍정적인 면은 원초적인 체념의 확대란 점이다. 그것은 비단 실험의 영역에서만이 아니라 모든 도예가들이 겪어야 할 귀중한 과정이 아닌가 생각한다.

미술평론가 오 광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