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의 변신

- 다시 고성종전에 붙여 -

지난 1982년에 있는 고성종의 도예전에 붙인 서문에서 나는 그 글을 다음과 같은 구절로 끝을 맺었었다. "귀속적이고 완상용이 아닌 도자기, 오다가다 마주 칠 수 있는 형상의 도자기, 그것을 새삼스럽게 나는 고성종에게 바라고 싶다"

이와 같은 바램 때문만이 아니라, 고성종은 그의 작품세계를 차츰 더 우리의 친근한 일상적 주변에도 접근시켜 오고 있다. 여전히 그는 각종의 <봉투>시리즈를 계속해 오면서 또 한편으로 그 모티브를 점차 확산시켜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봉투는 봉투이되, 그 봉투의 종류 또는 봉투의 질감의 다양화를 시도하는 한편, 봉투의 「변신(變身)」하는 모습을 추적하려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상식적인 이야기이기는 하나 종이의 원료인 펼프는 그 원재가 나무이다. 그러고 보면 나무와, 또는 그 뿌리와 기둥과 종이봉투와의 사이에는 일종의 숙명적인 일종의 운명 공동체같은 것이 존재한다. 그리하여 뿌리에서 기둥으로, 그것이 다시 펄프로 변하고 마침내는 봉투라고 하는 문&#47744;세계로의 변신하는 그 사연이 고성종의 일련의 근작에서 보여지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시도는 고성종으로 하여금 도자예술의 보다 근본적인 재검증이라는 문제로 이끌어가고 있다. 즉 흙을 빚는 다는 것과 그것에다 어떤 형상을 부여한다는 것, 그리고 흙이 본래의 질감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전혀 새로운 형실 체험을 우리에게 제기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고성종은 도자예술을 일종의 「영(零)의 상태」로 환원시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어떤 「모델」을 미리 설정해놓고 흙을 빚어가는 것이 아니라, 흙과 손과의 만남에서 오히려 작가의 상상력과 의도가 촉발되며 거기에서 투박하면서도 신선한 형태의 환타지아가 태어나는 것이다.

규격화된 모델에 구애되지 않고 흙의 질감과 모양새를 그대로 살려내고 있는 고성종의 도예작품에서, 특히 근작에서 새롭게 눈에 띄는 것은, 이른바 「회화적 효과」에 대한 그의 관심이다. 회화적 효과라고 해서 도자기 표면에 그림을 그려 넣는다든가 또는 강렬한 유약 효과를 말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거의 비정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일그러진 도자기의 형체도 형체려니와 그 표면이 매우 다양한 음영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마치 화면 위에 화가가 거친 터치를 남기고 분방한 획을 그어 나가듯, 고성종은 점토 표면에 그 표면을 더듬는 듯한 손끝 자욱으로 물결지게하면 또는 손 끝으로 그어진 획으로 파이게 한다. 그리하여 점토의 표면 전체가, 무광택의 자연색을 그대로 지니고 있으되 활기 찬 표정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이 회화적 효과는 고성종의 근작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것으로 보이는 일종의 「삽입」수법에 의해 한층 극대화되고 있다. 삽입이란 점토 표면에 상표 또는 문자따위를 그려 넣는다는 뜻이다. 이는 아마도 회화작품에 있어서의 파피에콜레에 버금 가는 것으로 생각되기도 하거니와, 그와 같은 회화기법이 대담하게 도입됨으로 해서 도예의 표현 영역은 가일층 확산되어 갈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도예의 개념 그 자체까지도 확산시켜 가는 것이며, 그리하여 도예는 여기서 고상하고 아름다울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이른바 전위 조각의 뒷굽을 밟을 필요도 없이 우리의 일상적 공간 속에서 하나의 「도예오브제」로서 엄연히 자신만의 독자적 존재를 주장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