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식의 도예세계



도예란 신비한 작업이다. 어떤 예술이건 技와 노력과 정성의 끝에서 비로소 그 가능성을 확인하기 마련이지만, 도예처럼 기와 땀과 정성을 다하고도 더욱 초인적인 힘에 기대는 예술은 아마 없을 것이다.
흙을 빚고 조형하고 구워내며 다시 바르고 손질해서 마지막으로 가마에 넣고 불을 지필 때는 아마 백일기도하는 여인의 성심에나 비길 것인지, 아무튼 처절한 비원의 기도가 시작되는 것이니 한 떨기 꽃을 피워내기 위하여 겨우내 매운 추위와 눈분배의 아픔을 겪어야 하는 대지처럼 도장은 하루가 삼질같은 그 시각을 다만 경건한 허심으로 천명을 기다리는 것이다.
권교수는 이러한 陶道를 걸어온지 10수년, 이제 그가 살았던 아픈 시험의 세월을 조심스럽게 열어보이고자 해서 도예전을 준비한 모양이다. 그동안의 역정을 회고하는 뜻으로 지난 것들을 몇 점 곁들이고 요사이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던 것 가운데 40여점을 선보이기로 한 것이다.
권교수는 퍽 과묵한 성격이다. 좌중이 떠들석해지고 몇 순배씩 이야기가 돌아갈만치 긴 시간의 회동에고 거의 한마디가 없는 것이 상례이고 그런 가운데서 누군가가 화중의 일을 물어보게 되면 정확히 핵심을 짚어 대답하곤 해서 여간 단단한 사람이 아니구나 하는 인상을 받았는데, 이번에 전시하는 작품들을 보고 그 정력적인 ?險心에 저으기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권교수의 이번 전람회는 한국의 미술계에 세가지의 새로운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첫째는 도예에 대한 일반의 통념을 과감히 깼다는 것이고 둘째는 여체의 성을 제재로 하던 종래의 방식에서 탈피하여 유아를 대상으로 한 생명의 부조이며 셋째는 예술의 영성을 파손에까지 확대하였다는 점이다.

'77년 「韓國現代美術代表作家100人選集」에는 한 사람의 도예가도 뽑히지 않았었다. 한국 전통 미술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도예인데 어찌하여 100인선에 빠진 것일까. 여러 가지 추칙이 가능하나 주요한 것은 한국 도예계의 수준이 아직도 병이나 항아리를 제작하는, 말하자면 고려청자나 조선백자의 모방에서 맴도는 한에서는 그것이 창조예술의 例에끼우기가 어려웠던 게 아니었던가 하는 편집자의 고충을 이해하게 된다.
그러한 도자기에 대한 일반의 통념을 과감히 파탈함으로써 그림이나 음악, 문학에 못지 않게 도예도 얼마든지 자유로운 창조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하여 보인 사람이 바로 권교수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를 그렇게 변신하게 한 것이 무엇인다. 그것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순수생명의 형상화이고 다른 하나는 파손의 채용이다.
첫째 순수생명의 표출에 있어서 종래의 수법은 대체로 그림에서나 조각에서나 성숙한 여체에서 유선을 끄어왔는데 권교수는 떡애기의 몽실몽실한 살결과 젖살의 곡선에서 원초적인 생명을 부조하는 새로운 실험을 감행한 것이니 그의 말대로 「동자 시리즈」로 불리는 일련의 작품들이 바로 그의 세 살짜리 아이를 모델로 한 순박의 표현들이다.
이렇게 작품의 제재를 「여체의 性」에서 「유아의 純」으로 전환했다는 것은 예술에 있어서는 형식의 혁명만큼이나 획기적인 내용의 발전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진면목은 둘째의 파손의 구조에서 유감없이 드러나고 있다. 강태성 교수의 <토르소>1974쯤에서 시작하여 간헐적으로 散見되던 파손의 구조가 권교수에게서는 매우 중심적인 과제로 다루어지고 있음을 보게 된다.
권교수에게 있어서의 파손은 거의 발?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것은 분명히 ?주의 예술적 가치체계에 도전하는 것으로서, 작품이라는 것을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고 있는 한 존재가치를 부여하려는 종래의 정태적 관점을 뒤엎고 예술을 이해하려는 적극적인 태도를 가지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새로운 세계를 갑자기 열어제끼어 도예뿐 아니라 예술전반에서 이미 사라져간 비실용의 것들에 대하여 눈을 돌리게 하는 계기조성을 시켜주므로써 예술의 소재와 사생의 확대에 적잖은 기여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다.

丁卯 光復節

靑石軒에서 李 靑 原(평론가, 한국학연구소장)



(w:48.5cm, d:31cm, h:57cm)

(w:32cm, d:16cm, h:37.5)

(w:40cm, d:13.5cm, h:37.5cm)

(w:38cm, d:34cm, h:42cm)

(w:37cm, d:30.5cm, h:33cm)

(w:37cm, d:12cm, h:35.5cm)

(w:47cm, d:30.5cm, h:37.5cm)

(w:31cm, d:27cm, h:54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