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에서 생각하고, 느끼는 작가



우리 주위에서 많아 볼 수 있는 도예가에는 몇 가지 유형이 있다.
흙으로 일상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지 그릇들을 만드는 장인정신 일품 도예가가 있고, 산업사회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전제로 규격화하고 표준화된 그릇을 만드는 제품정신의 산업도예가가 있다.
마찬가지로, 흙으로 그릇을 만들면서 현대사회와 미술의 급변하는 요구들을 반영해 보이려는 장인기질의 현대 도예가가 있고, 흙을 빌어 자신의 생각과 느낌과 이상을 표현해 보려는 작가 정신의 창작 도예가도 있다.
황현숙은 분명 흙을 빌어 자신의 작가적 삶에서 피어난 생각과 느낌, 그리고 작가로서의 바램을 표현하는 창작 도예가의 한 사람이다.
그는 흙에서 생각한다. 흙마다의 다른 성격을 생각하고 흙이 바라는 모양을 생각하며 흙마다의 다른 표현 가능성을 생각한다. 어느 경우에도 그는 생각을 먼저하고 흙을 만지는 단순한 기능인의 자세에서 흙을 보지 않는다.
그래서 그가 보여주는 그릇들의 모양이나 재질감은 어떤 실제의 용도나 기능 때문에 만들어진 것들보다 보기에 재미있고, 자유롭고, 변화의 가능성을 풍부하게 열어 보인다.
그는 흙에서 느낀다. 흙의 습기와 부드러움을 느끼며 흙의 고움과 섬세함, 그리고 강인함을 느낀다. 그는 느낌으로 흙을 다루며 그 느낌 속에서 움터 오른 어떤 모양과 색깔, 무늬와 쓸모를 그릇 형태로 만들어 낸다.
그래서 그의 작품 하나하나에 흙의 성격과 요구만큼 섬세하고 아기자기하고 포근한 작가의 개성이 물씬 풍겨나게 된다.
도예가로서 그는 흙에게 자신의 작가적 이상을 실어 보낸다. 그는 흙이 그릇을 빚는 단순한 재료로 있지 않고, 날로 거칠게 메말라 가는 삶의 구석구석을 따뜻하게 바꾸어 놓는 자연과 인간의 본래의 모습 자체이기를 바란다.
그는 무엇을 담는 그릇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작품을 통해 변화의 가능성, 성장의 가능성, 적용과 변용의 가능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한한 상상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삶의 풍성한 체험들이 전달되기를 바란다.
도예가 황현숙은 흙에서 생각하고 느끼며, 흙에게 기대를 건다. 그래서 그는 흙으로 성형 가능한 온갖 것들을 빚어내고, 흙이 낼 수 있는 온갖 색감과 질감을 하나의 뜻이 있고 꿈이 깃든 모양으로 만들어 내는 조형실험을 꾸준히 계속해 간다.
그가 보여줄 다음 작품이 어떤 것일까를 기대하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없는 것도 그의 이러한 삶과 꿈이 깃든 조형실험정신에 가지는 매력 때문일 것이다.
피카소는 흙으로 만든다. 샤갈은 흙으로 꿈꾼다. 이제 우리는 흙으로 느끼는 도예가 황현숙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서울미대교수 유 근 준



풍경(w:30cm, d:28cm, h:29cm)

사랑(w:22cm, d:25cm, h;20cm)

추억(w:15cm, d:15cm, h:26cm)

풍경(w:19cm, d:12cm, h:21cm)

풍경(w:31cm, d:8cm, h:23cm)

풍경(w:10cm, d:3.5cm, h:14cm)

캘리포니아(w:20cm, d:15cm, h:25cm)

화심(花心)(w:27cm, h:24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