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도예의 價値秩序를 위한-



최근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현대도예의 다양한 변모는 종래의 도예가 지녀왔던 소예술로서의 가치질서를 전혀 다른 시각에서 조명하고 있다. 즉 실용과 아름다움을 기본으로 한 공예의장적인 도자기의 일편론에서 벗어나 새로운 조형언어의 매체로 선택되어 순수조형물로써 고유성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도예가 원경환은 홍익대학교와 대학원을 통하여 전통과 현대도예에 대한 연구와 실험을 거듭함으로써 나름대로의 중심과 도예에 대한 맥락을 찾고자 노력하였으며 1983년의 渡日前 자신의 작업방향에 대한 윤곽을 설정하였으리라 보여진다. 1982년 「한국도작가회전」에 출품한 그의 작품은 이듬해 일본 京都에서 가진 첫회 개인전의 중요한 암시가 되었다. 그다지 크지 않은 정교한 육면체-slipcasting으로 성형한 지극히 기하학적인 맛-의 각면은 자연스럽게 뜯어낸 unit가 군집으로 제시될 때 더욱이 전시대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벗어나 바닥에 펼쳐짐으로 얻어지는 의외성과 엄격한 질서의 변수 등이 京都展에서는 한층 그 내용이 다채로워지고 표현범위가 확대되었던 것이다. 여기에 대해 일본 「每日新聞」은 "대작으로 첫 개인전-유학 중인 한국의 젊은 도예가"라는 제목으로 그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기사내용 중에서 "석고 mold로 성형한 오브제의 집합체, 전면에 벌레가 먹은 듯한 구멍을 뚫은 흑색의 입방체는 여러 줄로 세워서 정방형의 둘레를 만들었고 중앙에는 작은 것을 불규칙하게 놓아 자기의 마음을 나타내었으며 다른 한 편에는 로케트의 탄두와 같이 까만 머리를 한 흰 오브제를 1,200여개 세워놓고 他人을 표현, 자기 마음이 다른 사람에 의해서 破戒되어가는 양상을 표현한 심상적인 작품이다. 單獨의 오브제가 아니고 집합체와 유기적인 물체와의 관계를 미묘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1985년 6월 갤러리 마로니에에서 가졌던 두 번째 개인전 역시 첫 번째의 것과 그 조형의 기본발상이 유사한 듯 하나 실제 그 내용과 방법론은 보다 환상적이었다고 본다. 기하학적이고 냉정한 육면체가 안니 보다 자유로워진 육면체를 한 두 번 비틈으로서 생기는 분방함과, 표면에 처리된 금속성의 액센트는 자칫 단조로워지기 쉬운 전체의 분위기를 이완시킴과 동시에 작품의 일부를 멱에 기댐으로써 공간에 대한 구조적인 감수성을 표현하였던 것이다.
1986년 2월의 세 번째 개인전에서도 역시 다량의 unit가 형태상의 변화를 거부하면서 마치 역사라는 큰 줄기의 침묵처럼 관람자의 시선의 위치에 따라 변화무쌍한 즐거움을 던져주는 것이다.
이번에 보여지는 그의 작업도 이전의 것들과 같은 맥락 속에 있지만 그 구상과 제작방법 및 규모가 진일보하였음을 알 수 있다.
직사각형으로 절단한 가로85cm 세로16cm의 흙 판 500여개를 편안한 마음으로 구성하면서 각 unit의 높이를 율동적으로 조절하고 바닥이라는 평면을 사선으로 분할하여 작품을 배치함으로써 전체적으로 대담한 대비효과를 의도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각 unit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칼을 흙 표면에서 절반정도만 넣음으로 해서 나오는 단면의 변화가 흙이라는 재료의 특성을 강조하였으며 일반적인 소성방법과는 달리 그을음을 이용하는 이른바 흑도소성에 의해 도판의 표면에 예측할 수 없는 불의 맛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이, 원경환의 여러 작품을 놓고 볼 때 우리는 몇 가지의 特記할 점은 발견하게 된다. 각각의 unit가 모여 하나의 거대한 작품으로 이루어지고, 입체와 평면이라는 공간개념을 거부함으로써 관람자와 작품의 관계가 상호 수직과 수평의 상황이라는 점이다.
다시말해 편안한자세로 보아서는 전달이 쉽지 않은 여러 각도와 위치에서 관람자의 시각을 유도하는 짖궂음이 있는 것이다. 또 한가지는 그의 작품에 유약이 사용되지 않는 것이다. 유약을 사용하지 않고 냉각환원소성이나 흑도소성 등으로 절도있게 표출시키고자 하는 시도는 앞으로의 한국현대도예의 전개에 있어 매우 의미 심장한 일면을 제시하고 있다.
찬란한 도예문화를 가진 한국의 현대도예가 장차 어떻게 발전해 나갈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이 땅에 근대와 현대의 시대구분이 시작된 지는 100년이 채 안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오천년의 긴 역사 속에서 다른 문화는 차지하고라도 한 시대의 도예문화가 적어도 500여년의 세월을 두고 이루어진 것을 보면 현재 한국현대도예의 역사는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젊은 도예가 원경환의 도예에 대한 深求와 熱情이 이 나라 현대도예의 여명기를 여는데 하나의 밀알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이 경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