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상을 소생시키는 작업

도예가 서한달의 이번 개인전은 8년만에 갖는 두 번째의 전시회가 된다.
첫 개인전에 발표했던 작품들은 주입성형과 판성형, 물레성형 등의 여러 기법을 이용한 것이었는데, 그때 이미 주입성형기법쪽에 대단한 관심을 갖고 있는 작가라는 것을 짐작케 하는 바가 있었다.
이번 개인전에는 온통 주입성형기법만을 이용한 작품들로 이루어진다. 이는 도예가 서한달이 그 동안 조용히 탐구해 온 주입성형에 대한 어떤 신념과 큰 자신감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그의 작업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들은 서한달의 그런 면모를 1983년 6월 한국현대 도예가회전에서부터 느꼈음직도 하다. 그가 다루는 형상에는 손쉬운 회전체가 제외된 비회전체 또는 복합체인데도 불구하고 조합의 접합방법을 거부하여 처음부터 온전한 한 몸으로 성형되는 그의 기법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색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틀에 대한 치밀한 계산이 원형을 빚을 때부터 있어야 하며 철저한 계획이 수반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는 자유분방한 형태구상의 욕구를 억제하면서 과학적 사고력을 동원하여 작업한다는 의미가 된다. 또한 한 개만의 성형을 위해 틀에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한 쌍을 성형하여 소성으로 완성하기를 즐기는 때문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훨씬 더 자유로운 도자성형의 여러 기법을 모두 체험해 본 그가 왜 이러한 번거로운 기법을 고집하는가 하는 점이 궁금해진다. 또 산업도자제품의 기법으로도 사용되는 점에서 많은 도예가들이 외면하다시피 하고 있는 주입성형에 심취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는 "마음 설레며 만든 원형으로 틀을 만들고 그 틀 속에서 다시 원형의 형상을 온전하게 소생시키는 기쁨"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열 달 동안 정성을 쏟고 산고를 겪으며 낳은 아기에 대한 애정과 같은 것이어서 원형의 형상과 틀계획에 이상이 생기거나 실패를 "낙태의 충격"과 비슷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비유에서 그의 작업태도가 생명체를 탄생시키는 정신적 위치에 서 있음을 알 수 있으며 그렇기에 한 치의 부분도 몸통에는 접합시키지 않고 한 살로 한 작품이 완성되어야 한다는 고집스러움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형상을 소생시키는 기쁨은 완벽한 새로운 창조의 기쁨으로 여겨진다.
또 그는 틀의 희생이 없는 수법을 썼음에도 같은 형상을 여러 개로 만들지 않고 오직 한 쌍만으로 완성하기를 즐긴다. 어떤 생명체이건 하나보다는 둘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생명체와 동일시하는 작업의 정신, 이것이 서한달의 마음이며 그의 성품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 쌍을 만든다는 것은 수의 생산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며 그의 작업은 그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간에 산업일반의 관심을 끌어들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수공예가 산업과 극한적으로 멀어져 가는 경향이 노골화 되고 있는 오늘 날의 시점에서 도예가 서한달의 고집은 어떤 사회적 임무 수행의 하나로 해석할 수가 있다.

그의 섬세한 성격에서 비롯되는 철저한 계획성은 주입성형기술의 탐구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정신성을 지녔기에 그가 몰두하는 기법이 예술성 표현에 적합치 못하다는 일반적 오해에 대한 도전 의식이 서려있다. 다시 말하면, 그의 작업은 공예성이 철저할 때 예술로서 공예가 성립되는 것이며 그것이 공예라는 신념의 실천일 수가 있다. 그러면서도 그의 작품은 일품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공예의 1차적 목적인 기능(실용)적 가치를 내세우지 않고 있는 것은 그가 작가인 동시에 교육 일선에 있는 교수의 신분임으로 그를 따르는 수많은 후학들에게 개성적인 미술공예와 사회적인 산업공예의 가능성을 함께 보여주고자 하는 욕심으로 해석할 수가 있다. -이 욕심은 한 쌍을 즐겨 내놓는 또 하나의 까닭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동예의 큰 두 가지 방향을 같은 비중으로 배우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하는 입장에서 한 가지 방향에 치우친 이념과 행위가 어린 후학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인가를 염려한 세심한 교육적 측면의 배려라 할 것이다.

그의 탐구결과가 어떻든 도예가를 겸한 교육자로서 서한달의 태도는 진지한 것이며, 우연성이 용납되지 않는 주입성형의 끝없는 시도로 관심있는 산업공예가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영향의 확산은 결국 좀 더 다양하고 아름다운 형상의 생활도예품 생산에 공헌되는 것이다.
수공예가 획득하는 사회적 지위는 생활과 우리된 차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그들의 작업결과가 사회적 성격으로 연결될 때 이루어지는 것이고 보면 순수미술과 같은 예술성 지향의 공예에서 보다 독자적인 공예의 예술성을 추구하는 것이 건강한 공예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따라서 도예가 서한달의 현대동예의 혼미한 이념 속에서 뚜렷한 공예의 독자적 예술성을 추구하는 이념을 소유한 작가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한마음(w;44cm, d:15cm, h:34cm)

보금자리(w: 24cm, d:10cm, h:34cm)

魚龍(w:62cm, d:15cm, h:23cm)

성장(w:30cm, d:15cm, h:37cm)

소망(w:21cm, d:11cm, h:26cm)(w:24cm, d:14cm, h:35cm)

외곬(w:36cm, d:19cm, h:14cm)

공존(w:15cm, d:44cm, h:34cm)

맥(w:23cm, d:10cm, h:40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