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날 학교 -
사진이 돌아갔지만... 첫날 실기실로 내려가는 길에 제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정말 많은 벽에 붙은 시편이었어요. 실기실 뿐만이 아니라 복도와 지하 도예과 실기실 모든 곳에 시편이 붙어있었어요. 유약 시편 뿐만 아니라 다양한 화장토나 안료의 테스트를 본 것들을 모두가 함께 공유할 수 있게 해 놓아서 정말 좋았던 것 같아요. 우리학교도 지하 도예과 실기실 벽에 이런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해 놓으면 좋을 것 같아요.
실기실에 들어가 자신이 원하는 자리를 배정해주고 자신의 작업 성향에 따라 조교에게 부탁하면 물레를 가져다주거나 테이블이 있는 자리를 사용할 수 있었어요. 핸드빌딩 하는 사람과 물레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비슷하게 있었고, 그리고 많지는 않지만 석고 캐스팅 작업을 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저는 물레 작업이 좋아서 물레를 부탁했고, 조교님이 제가 한 달동안 쓸 물레를 가져다주었어요. 학교에서는 항상 물레는 공용으로 사용했는데, 나 혼자 쓸 수 있는 물레를 받았다는 사실이 감동스럽고 뭔가 어른이 된 것 같아서 눈물이 나올 뻔 했어요.
- 가마 시스템 -
사진은 유리 용해로인데, 도자 가마도 정말 많았어요. 우리학교 가스 가마 네 개, 전기가마 열 네 개가 있으니까 가마도 많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가마가 수적으로도 많고 양적으로도 커서 부러웠어요.
제가 가서 놀란 것은 가마 시스템이었어요. 알프레드의 가마 시스템은 원래 자기가 자기 기물을 소성하는 시스템이었어요. 학교에서는 항상 기사님을 통해 가마를 잡고 소성하는 방식이어서 제가 가마에 재임하고 허무는 것 이외에는 소성 과정 자체에 참여해본 적은 없었어요. 그런데 여기서는 학부생도 자기가 알아서 가마 소성을 해야 한다는 것을 보고 굉장히 놀랐어요. 한국에 돌아와서 늦기 전에 나도 내가 혼자 가마를 때는 법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중에 학교를 졸업하면 언젠가 저도 혼자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에요.
실제로 알프레드 여름학기에서 가마를 땐 방식은 가마 관리 담당 조교가 한명 있었고, 그 조교가 가마 스케쥴을 알려주고, 각각의 소성 방식이 써있는 카트에 작품을 올려놓으면 조교가 가져가서 가마를 때주는 방식이었어요. 예를 들어 내가 초벌을 하고 싶으면 bisque라고 써있는 카트에, 환원이 하고 싶으면 reduction이라고 써있는 카트에 제 기물을 올려놓으면 되는 방식이었어요.
- 데모 & 슬라이드 -
매일매일 데모와 슬라이드가 있는데, 존 길 교수님을 시작으로 모든 조교들, 그리고 이인진 교수님까지 하루에 한명씩 돌아가면서 데모와 슬라이드를 봤어요. 데모와 슬라이드에 꼭 참가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재미있어서 매일매일 조금씩 보곤 했어요.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다 보면 하루의 반이 거의 지나가기 때문에 내 작업을 할 수가 없어서, 적당히 조절해가면서 보아야 해요. 아침에는 작업 데모, 오후에는 개인 작업에 대한 슬라이드 쇼가 있었는데요. 그 전날 밤에 그 사람 작업에 대해서 좀 찾아보고 봤던 것 같아요.
슬라이드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간략히 30분정도 발표하고 질의응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는데요. 모두 영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아주 어려운, 작업에 대한 깊은 이야기가 진행될 때는 어느 정도 어려움은 이해하고 들어야 했어요. 하지만 분위기가 아주 딱딱한 것이 아니라 부드럽고, 자신의 작품에 대한 열정을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각자 자신의 작가 개성이 뚜렷하게 드러나고, 그 작품에 대해서 어떻게 시작할 수 있게 되었는지,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작품과 그 이전의 기반에 대해서 설명해 주는데, 저에게 있어서 앞으로의 작품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할지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게 해 주었던 것 같아요.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슬라이드는 웨인 힉비(Wayne HIgby) 교수님의 슬라이드였어요. 자신의 작품에 있어서 형태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그리고 그러한 형태의 존재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이야기해주었어요. 중국 타일공장에서 작업한 내용도 새로운 teh라 아주 흥미로웠는데, 나이가 많은데도 아직까지도 새로운 무언가를 위해 이렇게도 노력하는 모습과 열정이 너무 존경스러웠고 멋지다는 생까이 들었어요. 알프레드 여름학기가 끝나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웨인 힉비의 작품을 만나게 되었는데 전시장 케이스에 들어있었지만, 그 때 웨인이 해준 말들이 다 떠오르면서 정말 새로운 느낌, 감정의 홍수가 밀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