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작가마 -

저에게 남아있는 장작가마의 이미지는 딱 두 개였어요. 하나는 다큐멘터리 같은 것에서 보면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가 가마 앞에서 앉아서 청자 매병을 유심히 보다가 팍 던져서 깨버리는 것. 그리고 하나는 이인진 선생님 작업장에서, 끊임없이 뜨거운 불 앞에 장작을 집어넣는 것. 이렇게 두 가지가 저의 머릿속에 남은 장작 가마의 이미지였어요. 신기하기는 하지만 내가 이걸 언제 해보겠나 싶고, 힘들겠다는 생각이 가장 크게 남았던 것 같아요.

알프레드에 가서 존 길 교수님이 여러군데 데리고 다니며 학교 여기저기 구경시켜 줄 때 장작가마를 보면서, 아 이번에는 한번 해보는건가? 하면서 약간 기대도 되고, 이전의 이미지 때문에 걱정도 많이 되었던 것 같아요.

실제로 장작가마를 때는 것은 두 번 이었는데, 저는 첫 번째 소성에는 대형 조형수업을 듣느라 참여하지 못했고, 두 번째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스튜디오 중앙부에 칠판에 써 있는 스케쥴이 있고, 제 기억에는 3-4시간 간격으로 조교님들이나 교수님이 계셔서, 그곳에 자신이 참여하고 싶은 시간에 이름을 적으면, 그 시간에 가서 가마를 때는 시스템이었어요. 첫 장작 가마였지만 조교선생님들이 옆에 있어줘서 내가 이 가마를 망칠까 걱정을 내려놓고 안심하며 참여할 수 있었어요.

재미있었던 사실은 장작 넣는 입구같은 곳에 I ♥ DOJAGI라고 써있었는데, 아마 여기 다녀간 한국 학생들이 써놓은 것 같은데, 실제 알프레드 학생들이나 조교님들은 이게 뭐냐며 궁금해 하더라구요. 뜻을 설명해주니 한국어인지는 전혀 몰랐다며 재미있어했어요. 장작 가마에는 그냥 아무 나무나 넣는 줄 알았는데, 껍질은 열 효율이 좋지 않아 껍질이 붙은 나무보다는 나무 속만 있는 것을 넣더라구요. 그리고 젖은 나무들도 좋지 않다고 최대한 마른 나무들만 넣어주었어요.

또 한가지 신기했던 것은 진짜 콘을 사용한다는 것이었어요. 이인진 선생님 작업장 옆에서 작고 예쁜 조형물이라며 다 녹아 흘러내린 콘을 보며 사진을 찍기도 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온도 확인차 넣은 것을 보고 예쁘다며 이건 어떻게 만든거지 궁금증을 가진 제 자신이 정말 멍청하게 느껴졌어요...(사실 콘이 녹아내린 모양이 굉장히 예쁘지 않나요? 저만 그렇게 생각하나요?) 제 shift가 되어서 갔을 때, 가마의 상태는 온도가 올라가는 것의 거의 후반부였어요. cone 10까지 때기로 했는데, 제가 갔을 때가 cone8이었는데요, 가마에 문제가 있었어요. 사용한 장작가마가 2 chamber였는데, 앞쪽 온도는 높은데, 뒤쪽 온도가 앞쪽과 cone이 하나 이상 차이가 났어요. 그래서 뒤쪽 chamber에 옆쪽으로 난 구멍으로 작은 장작들을 계속 넣어주었어요.

결과적으로는 가마의 결과가 굉장히 좋게 나왔어요. 저는 뭐가 좋게 나온건지 잘 몰랐지만, 설익은 기물도 없고, 확실히 유약의 효과가 가스나 전기가마와는 뚜렷한 차이가 보였어요. 뭔가 자개같은 영롱한 빛이 나기도 하면서도, 라쿠와는 다른 신기한 맛이 있었어요. 재미로 유약을 바르지 않은 것을 하나 넣어보았는데, 아주 신기한 재의 텍스쳐와 색이 나와서 재미있었어요. 이렇게 효과가 나온 것을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제 작업에 내 손으로 만져지자 정말 감동이 컸어요. 앞으로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장작가마에 넣어서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 크리틱 -

크리틱은 대형 조형 작업을 전시했던 Robert C. Turner 갤러리에 테이블을 펼쳐놓고, 존 교수님이 골라준 작업들을 전시했어요. 존이 제 볼 5개와 타일들을 골라주셨는데, 그 것을 올려놓고 크리틱을 기다리는 동안, 같이 작업을 하던 다른 미국인 아주머니 한분께서, 괜찮다면 그릇 하나를 사도되겠느냐, 돈은 원하는 대로 줄 수 있다고 하셔서 정말정말 너무 놀라고 기뻤어요. 일단 첫째로 내가 만든 작업을 좋아해주는 것이 고마웠고, 그것을 가지고 싶을 정도로 좋아한다는 사실이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가격을 얼마를 받을지 몰랐기에 선배들에게 물어보고 적당한 가격을 매겨 그 아주머니께 팔았어요. 잘 쓰고 계시기를 바래요.

작품을 사주신 분이 들고 계시는 사진

존의 크리틱은 상당히 긴 시간이 진행되었어요. 참여한 사람들도 많을뿐더러 한 사람당 거의 짧게는 3분, 길게는 5분까지 작업 크리틱을 해주었기 때문이었어요. 존의 크리틱의 특징은, 무엇인가 잘한 것에 대해 초점을 두기 보다는 앞으로의 작업은 어떻게 진행하면 좋을 것 같다는 것들을 넌지시 던져주는 점이었어요. 저도 제 크리틱 내용을 잘 듣고 싶어서, 그리고 긴장해서 다 까먹을 것 같아서 녹음기를 틀어놓고 크리틱을 들었어요. 한국에 돌아와서도 알프레드에서 하던 작업을 연장해서 했기 때문에, 작업을 하다가 막힐 때 가끔 그걸 틀어서 듣곤 했어요. 사실 크리틱을 녹음해서 듣는 것은 저에게 정말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학교에서 교수님들이 크리틱 해주시는 것들도 저는 대부분 녹음을 해서 가지고 있는데, 크리틱 현장에서는 긴장한 상태로 교수님이 해주시는 이야기를 처음 듣기 때문에, 가장 제게 강렬하게 다가오는 내용들만 들리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교수님 말씀에 있어서 중요하지 않은 부분은 없고, 한마디 한마디가 다 도움이 되기 위한 말씀들이기 때문에, 여유를 가지고 녹음된 내용을 들으면 조금 더 잘 이해가 되고, 실제 적용에도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실제로 저는 매번 들을때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 같아요. 

존 선생님과의 크리틱(작게 저도 나왔어요! 신난다)

크리틱을 마친 후 존 선생님 집에서의 High Tea (동화책에서만 보던 티파니라니!!)

-느낀 점-

 

미국을 기회의 땅이라고 부르는데, 지금까지 미국에 수차례 다녀온 저지만, 한번도 미국을 기회의 땅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어요. 하지만 저는 알프레드 다녀온 것이 저의 ‘인생’ 기회였다고 생각해요. 저에게 있어 굉장히 많은 깨달음을 준 것도 있지만, 사실 내가 도자기를 평생 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그냥 내 자신에 대한 회의감에 대해서 답을 제공해 준 기회였어요.

내가 이걸 평생 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정말 이게 평생 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들이 많이 든 상태에서 비행기에 올랐어요. 생각은 하나도 정리되지 않았고, 그냥 내 자신에 대한 불신만 계속 들었던 것 같아요. 어떤 사람들은 니가 잘하는 것을 해라하는데, 내가 잘하는게 도데체 뭔지 모르겠고, 내가 이걸 잘해도 정말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것이 이것인가 싶었어요. 그럼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을 한다면, 또 똑같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도 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빙글빙글 생각들은 돌고 그냥 계속 고민만 늘더라구요.

하지만 알프레드에 가서 작업하면서, 너무 행복하게 작업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어요. 사실 작업을 하면서는 아무 생각도 안 들었지만, 매일매일 오랜 시간 작업을 해도, 심지어 굉장히 몸이 힘든 작업을 해도 육체적으로 힘들지 않았고, 무표정한 내 표정이 웃는 얼굴로 변했고, 무엇보다 아침에 일어나서 작업장에 가는 것이 너무 좋아서 꿈도 꾸지 않고 눈 감자마자 바로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어요. 이런 내 자신을 보면서,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원하는 것을 한다면 정말 행복하게 살 수 있구나. 이걸 평생 해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때의 저 같은 상황에 놓여있는, 미래에 대해 고민이 많은 분들은 가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제 경우에는 아주 시원하고, 깨끗한, 좋은 고민 해결이었어요. 하지만 그냥 외국에 놀러간다는 생각으로 가시는 분들에게는 정말 비추입니다. 알프레드는 노는 것이 불가능한 곳이에요. 맛집도 없고, 쇼핑하거나 구경할만한 곳도 없어요. 작업을 하는 게 즐거운 분이라면, 한달 동안 극강의 행복감을 체험하실거라고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