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2013 아시아현대도예전 기념세미나
2013-06-12 (수) 18:03 조회 : 2009
 
2013 아시아 현대 도예전
 
 
                               가나자와21세기미술관 2013618-714
                               아이치현도자미술관 전관 201383-929
 
 
기념세미나
 
실용성조형성에 대한 재조명
일시 : 2013 6 18() 오후3-5
장소 : 가나자와미술공예대학
 

 
기조강연
아시아 현대도예전  쿠세 켄지 / 가나자와미술공예대학교 학장
 

가나자와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가나자와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아시아현대도예전에 출품하는 아시아의 젊은 도예작가들에 의한 현대적 조형표현의 최첨단을 이곳 가나자와시에서 보게 된 점은 가나자와 시민에게 있어서 매우 귀중한 기회로서 대단히 기쁘게 생각합니다. 나도 7년 전만해도 대학의 도예 교육현장에서 학생들과 함께 작품을 제작하고 있었습니다. 교감전의 시작은 서울의 홍익대학교가 주최로 일본 아이치도자자료관의 협력을 얻어 학생들의 작품을 전시하게 되었습니다. 초기의 기획의도가 이렇게 크게 성장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신 홍익대학교와 아이치도자자료관의 관계자 여러분께 경의와 감사의 말씀을 드리는 바입니다.
가나자와미술공예대학교은 1946년 예술과 공예를 사랑하는 가나자와 시민이 설립 한 미술공예전문학교가 시작이었습니다. 그 당시 전후의 혼란기에도 불구하고 「미의 창조를 통해 세계평화에 기여하자」는 건학 이념을 가지고 설립되었습니다. 그 후 역사적인 미술과 전통산업공예를 시작으로 현대미술, 공예, 디자인, 예술학을 망라하는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보유하는 대학교로 성장하였습니다. 건학 이후 현재도 가나자와시민이 대학운영을 지원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가나자와시는 미술대학교 이외에도 가나자와21세기미술관(
21世紀美術館), 나카무라기념미술관(中村記念美術館), 우다츠야마공예공방(卯辰山工芸工房)과 직업대학교, 시민예술촌 등 많은 문화활동을 하는 도시입니다. 인근에서는 19개의 대학교를 보유하고 있는 대학도시이기도 합니다.
이 지역은 에도시대의 300년간에 걸친 일본의 역사적인 전통공예작품이 현재도 생산되고 있습니다. 염색공예작가 카가유젠(
加賀友), 옻칠공예작가 카가마끼에(加賀蒔), 쿠타니소성(九谷), 금속공예작가 카가조간(加賀象嵌) 중에서도 1640년경에 만들어진 고쿠타니(九谷)라고 칭하는 채색화 도자기는 지금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독창적인 표현기법으로 국제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공예는 현대적 표현으로 다시 태어나 국제적으로도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공예 분야에서 유네스코가 인정하는 창조도시로 채택 된 점도 가나자와 시민의 자랑 중 하나입니다. 가나자와는 일본열도의 동서의 중심선에서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연중 습기가 있는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한 지리적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가나자와는 하쿠산(해발2684m)을 등지고 동해를 바라보며, 변화무쌍한 정경과 자연환경, 그리고 풍부한 관광자원을 가지고 있어서, 이러한 점들이 다양한 예술표현가들에게 중요한 환경조건으로 작용하여 오늘날의 풍부한 문화를 가지게 된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한편 메이지시대(1867~1912) 이후 이 지역에서 많은 문호와 국제적인 철학자, 과학자가 배출되었다는 점도 수준 높은 문화의 축적과 전통에 대한 올바른 계승이 되어왔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가나자와21세기미술관은 세계적인 현대미술의 최첨단의 정보를 수집하여 시민에게 보여주고 있어서 매년 관람객수가 150만명을 넘습니다. 가나자와에 모인 젊은 예술가 지망생들의 활력과 희망에 힘입어 거리는 예술적으로 변모하여 밝고 희망에 찬 에너지원이 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가나자와는 뿌리 깊은 전통문화와 최첨단의 현대적 예술표현이 수레의 양 바퀴처럼 존재하여 지금도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있습니다
.
가나자와21세기미술관 건설에 앞서 고고학발굴 조사 결과, 지하 최하층에서 죠몽시대 만기의 토기와 야요이토기가 출토되었으며, 중·상층에서는 중세의 도자기, 중국대륙이나 한반도에서 유래된 도자기, 대량의 큐슈지방의 아리타소성의 채색도자기, 당진과 세토의 도자기류 등과 함께 무사들의 소양품으로 보이는 라쿠소성의 다완과 그에 따른 소규모의 소성도구가 출토되었습니다. 출토된 도자기유물만으로도 대부분의 역사편년을 구성 할 수 있는 근거자료로 원시고대부터 근세까지의 도자기가 현대미술관 지하에서 출토되었습니다. 이것은 가나자와가 오랫동안 동해의 해양무역의 거점으로 국제적인 정보를 수집하고 번영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국제적인 최첨단 예술작품을 전시하는 박물관지하에 역사적으로 귀중한 다양한 층의 흔적이 묻혀있었다는 것을 역사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합니다
.

일본 도자기의 역사는 세계적으로도 매우 오래되어 14~5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 중에서도 죠몽중기에 만들어진 화염 토기는 사용을 거부하는 것처럼 토기의 구연부분에 타오르는 불길과 같은 대담한 조형이 장식되어 있어서 높은 독창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토기도 음식을 조리한 흔적이 있어서 실용의 기능을 가진 도구였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단지 과도한 장식에 보이는 조형은 기능을 넘어 주술이나 신앙과 같은 비실용적이며 영적인 인식이 조형화되었습니다. 그릇이나 조리도구 외에 죠몽시대 초기부터 만들어진 도자기의 특징으로 기괴한 모습을 한 토우가 있습니다. 토우는 분명히 비실용적인 조형물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어디까지나 현대를 사는 우리들의 인식일 것입니다. 선사시대의 사람들에게 어려운 자연환경 속에서 생존하고 생명을 이어나가며 풍요를 기원하는 상징으로 실용이라는 매우 중요한 도구의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화염토기의 과도한 장식적 조형은 인간이 요구하는 물리적 필요성과 정신적 필요성이 합체되었다고 보여집니다
.
현대의 도자기는 오늘 여기에 모이신 여러분들이 제작한 예술적으로 자유로운 조형작품과 수공예적 작품, 대량생산된 디자인 제품, 건축자제에서 하이테크기기에 사용되는 파인세라믹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세라믹 ceramics(도예)과 클레이 워크 clay work(흙 작업)가 섞여 있는 것입니다. 동일소재나 공통의 기자재와 도구를 사용하여 마지막 단계에서 인간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고온의 불에 의해 완성되는 것으로 변화라기보다는 변용에 가까울 정도로 변모한 모습으로 가마에서 나옵니다. 이처럼 어디에도 구애 받지 않은 자유분방함은 표현영역을 떠나 매력적이며 다른 조형분야에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무한한 표현세계가 여러분이 개척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도토(
陶土)와 자기토(磁器土)와 불의 존재에 감사하며 기성의 개념을 타파하고 더욱더 새로운 독창적인 작품 세계에 매진합시다. 이번 전시회의 성공과 여러분의 활약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실용과 조형의 개념 너머,
해주백자의 시대적 욕망을 보다  박남희 / 2013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전시감독
 
 
고대 철학자 소크라테스에 의하면, 나무로 만든 휴지통이 황금으로 만든 방패보다 낫다고 한다. 그의 이야기는 아직까지도 아름다운 대상과 그것의 쓰임에 대한 모든 서사들의 첫 선언처럼 남아있다. 특히 그것이 근원적으로 실용적 목적을 가진 대상이라면 더욱 더 복잡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적어도 순수하게 감상의 대상이 되는 예술이 아닌 쓰임이 원래의 목적이었던 공예에서는 더욱 심각하다.
공예, 특히 도자는 인류 역사와 함께 해 온 최초의 도구이면서, 최초의 예술이다.
, 목적을 가진 대상이라는 점에서 철저히 ‘실용’적이면서, 그 자체로 당대의 미적 관습이나 취향이 반영된다는 점에서 ‘조형’적이다. 실용과 조형은 상호 의존적인 태도로서 도자에서 만나지는 것이나, 때때로 각각의 정도의 차이에 따라 ‘실용적’ 혹은 ‘조형적’ 성격을 부각시킬 수는 있을 것이다.
애초에 도자를 만들어온 많은 과거의 제작자들은 이러한 두가지 태도를 각각 구분해서 생각하고 만들지는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다만 이 태도들은 삶의 세계에서 오는 목적적이고 도구적인 생활세계에 요구에 응하는 경우에는 더욱 실용적이 되었을 것이고, 심미적 대상물로서의 요청에 응하는 경우 당연히 조형적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같은 ‘실용’이나 ‘조형’과 같은 가치를 지속적으로 도자, 넓게는 공예계 전반에서 쟁점으로 하는지에 대해선 보다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적어도 이러한 쟁점은 두가지 측면에서 관심의 대상이되고 있는 것 같다. 첫째, 이 두가지 가치가 적절하게 조화롭게 무리수를 두지 않고 드러나는 상황들이 전개되었다면 이런 쟁점이 기인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다르게 말하면, 이 두 가치가 도자에서 절대적으로 정체감을 이루는 것들인데, 지나치게 하나에 과도한 가치를 둘 경우, 한편으로는 산업적 제품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순수미술이라 범주화된 영역과 공유됨으로써 도자 스스로의 정체감을 변질 혹은 왜곡한다는 해석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둘째, 이러한 쟁점은 개념이나 영역이 구분되고 체제화되었던 근대적 사유 태도의 지속과 반성에서 기인한다는 점이다. 적어도 칸트가 예술이 목적 없는 합목적성을 가진 것이라는 정의했던 것이나, 콜링우드와 같은 이들이 순수예술과 공예를 위계적 관점으로 제시해왔던 것이 그 직접적인 원인이되고 있다. 이들 근대기 미학자들의 정의는 분명, 르네상스이래 지속된 순수예술이라 불리는 영역들이 예술가의 정신적 가치의 소산임에 반해, 공예가 육체적 활동을 수반한 결과라는 점으로 미적으로 평가절하 되었던 것과 관계 된다.
이러한 두가지 측면은 공예, 특히 도자 영역에서 ‘조형도자’나 ‘산업도자’와 같은 분리를 나오게 했다. 또한 ‘도예’라는 용어도 그와 같은 맥락에서 통용되고 있다. 적어도 예술이라고 생각한다면 순수미술이 그러한 것처럼 표현의 자율성에 보다 많은 포커스를 두고 작업하는 것이 정당하기 때문에 이 부분이 자연스럽게 보다 강조되는 상황이 보다 많이 목도되었다. 이는 한편에서 공예가 예술에게 느끼는 일종의 미적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것들 모두가 모더니즘 미적 개념과 구분이 만들어온 정체성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그와 같은 구분이나 경계가 그다지 중요한 상황은 아니다. 모든 문화가 탈경계를 넘어 통섭과 융합을 드러내고 있는 동시대는 범주나 개념의 틀이 더이상 중요하지 않다. 다시금 시대를 거슬러 ‘실용’이니 ‘조형’이니 하는 문제 역시 사회적 욕망과 시대정신의 관점에서 살펴보는 편이 보다 유용한 관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 실용이나 조형이나 하는 문제들이 시대적 욕망에 따라 용도도 전도되고 표현 관습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판단될 수 있는지에 대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예컨대, 20세기 초 해주지역에서 나온 백자들은 이전의 이같은 ‘실용’과 ‘조형’의 관점을 융합한 양식적 특징을 보인다. 그런의미에서 이미 동시대의 탈경계적 지점을 예고한 보다 앞선 근대의 도자라 할 수 있다. 옹기형태를 띄고 있으나 백자토로 만들어졌고 청화로 그림이 그려진 해주백자는 이를테면 ‘실용’이나 ‘조형’이 완벽하게 상대적 가치를 극복하며 용융된 한 사례다.
물론 한국에서는 그간 ‘해주백자’에 대한 논의가 활발할수가 없었다. 물리적으로 최근 북한으로부터 유입되어 만날 수 있기 전까지 (60, 70년대 한국의 인사동에서 간혹 눈에 띄기는 했다.) 그것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적었다는 것도 커다란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