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수는 중의적이다. 사회적으로는 인간 전체를 포괄, 스피노자의‘자기보존의 욕망’에서 비롯되는 현대사회 내부의 긍정 및 생성의 욕망을 의미한다. 그리고 개체적으로는 프로이트 전기의 리비도, 즉 성충동과 후기의 리비도, 즉 본능적인 생리적ㆍ심리적 에너지를 아우른다. 이성의 세계인‘안’과 욕망의 세계인‘밖’이 동시에 존재하듯, 촉수는 성적 욕구인 내부(자아 리비도)와 외부(대상 리비도)로 동시에 향한다. 이처럼 내외부로 동시에 향하기에, 촉수는 만족을 향해 움직이는 리비도(에너지 전체) 자체이다. 촉수는 완전히 부착되지 않고 단지 구멍에 꽂혀 있을 뿐이다. 구멍의 역할은 프로이트의 입이나 항문이다. 이는 바타이유의 에로티즘에 관한 한, 우리 사회의 현실적 에로티즘이 실존적 에로티즘에 근접하지 못한 채 단지 구순기 또는 항문기 단계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실존적 에로티즘을 향한 모색은 바로 그 구멍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촉수를 작품에서 간단히 제거할 수 있는 것처럼, 실존적 에로티즘을 향한 모색 역시 손쉽게 포기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인간과 에로티즘과 존재는 항상 현실과 실존 사이 어디쯤에 위치해 있다. 이것이 에로티즘을 향해 개체별로, 자의적으로 촉수를 세울 수밖에 없는 이유이자, 자기학대적 선동에 몰입해야 하는 이유이다.

 작품에 사용된 도판은 붉은색 꽃문양이 패턴처럼 새겨진 전사지를 붙여 번조했다. 다량의 씨앗을 품은 채소류에 두 종류의 금색이 칠해져 있는데 그것은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위해 억지를 쓰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상징한다. 실존적 에로티즘에의 몰두 및 모색을 너무도 쉽게 포기한 채 정형화, 도식화된 에로티즘에 머물고 있는 현대사회의 얄팍함을 드러낸다. 문양이 가지는 정형화, 도식화 이미지가 꽃이라는 아름다운 소재와 금색을 통해 천박하게 표현되는데, 가식적이고 표면적인 아름다움은 일방적으로 잘 짜인 사회구조 속의 얄팍한 에로티즘을 대변한다